범죄 피해 회복 목적 ‘대화 프로그램’ 인격 마주하며 ‘교정 아닌 갱생’ 시도 소수의 가해자는 삶의 태도 바꾸기도 ◇피해자가 가해자에게/사이토 아키요시, 니노미야 사오리 지음·조지혜 옮김/336쪽·1만9000원·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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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성범죄에선 회복적 사법을 활용하기가 어렵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마주하는 것 자체가 큰 장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복지사이며 성폭력 가해자 임상 전문가인 저자 사이토 아키요시 씨는 회복적 사법을 시도해 보고 싶었다. 오랫동안 재범 방지를 위한 치료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피해자와 가해자가 서로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많다는 점이 회복 저해 요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그의 앞에 “가해자와 대화하고 싶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이 책의 두 번째 저자인 니노미야 사오리 씨다.
니노미야 씨는 1995년 성폭력 피해를 입고 장기간 통원 치료와 상담을 받았다. 사진가로 활동하면서 성범죄 피해자 지원 전화 활동 및 의존증 회복 커뮤니티 미술 치료 강사 일을 하고 있는 그는 20년이 지났음에도 ‘왜 나였을까’ ‘나여야만 했던 걸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에 끊임없이 맴돌았다. 책은 그가 2017년 7월부터 진행한 (자신과 관련 없는) 성폭력 가해자들과의 회복적 대화 프로그램을 기록했다. 한 달에 한 번, 참가자들은 같은 장소에 모여 니노미야 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가 편지를 쓰면 답장하며 편지를 교환했다. 사이토 씨는 ‘하루에 1분이라도 피해자를 생각해 달라’는 말을 듣고 변화하는 가해자들의 표정을 관찰한다. 어떤 사람은 의식이나 행동이 바뀌려는 낌새가 보이지만, 니노미야 씨가 힘겹게 꺼낸 말이 공허하게 스쳐 가는 경우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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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건 가해자들의 한없이 취약한 인간성이다. 자기의 잘못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채 인정받고 싶은 욕망을 기형적으로 키웠고, 타인을 해치는 식으로 자기를 추켜세우려는 경향이다. 이들의 낮은 자존감과 편협한 자존심으로 폭력적인 인정 욕구를 강요하던 인격을 바꾸는 게 ‘교정이 아닌 갱생’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이었다.
사람은 고쳐 쓸 수 없다는 말이 있듯, 피해자와 가해자의 대화가 모든 걸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니노미야 씨에게 삶을 긍정하는 태도를 익히고 자긍심을 되돌리겠다고 편지를 보내는 소수의 가해자도 있었다. 취약한 인간성에 희망이 있다면 아주 낮은 가능성이라도 결국 사람을 바꾸고 생각을 바로 세우는 것은 언어로 세운 구조, 대화였다. 책은 그러한 힘겨운 시도를 담고 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