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한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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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약가제도 개편안은 환자들의 신약 접근성 측면에서 큰 진전을 보였다. 신약의 건강보험 등재를 위해 오랫동안 필요성이 제기돼 왔던 ‘약가 유연계약제’와 ‘적응증별 약가제도(IBP·Indication Based Price)’가 포함된 것이다.
약가 유연계약제는 제약회사와 정부 또는 보험자 간에 약품 가격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계약 방식이다. 약가 유연계약제의 대상 범위와 약가 산정 기준이 이번에 명시돼 빠른 속도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환자 입장에서는 신약이 가격 문제로 급여 문턱에서 대기하거나 등재가 좌절되는 사례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약 하나가 외국에선 다양한 질환에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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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IBP에 소극적이었던 정부가 효과성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은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현장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구체적인 도입 일정이나 방법이 명시돼 있지 않아 IBP 도입이 또다시 미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이 제도가 필요한 이유는 명확하다. 현재 약가제도에서는 치료제에 새로운 적응증(해당 약의 효능, 효과)이 추가돼 건강보험 급여 범위를 넓히려면 환자가 늘어나는 만큼 약값을 반드시 인하해야 한다. 비용효과 평가는 적응증별로 실시하면서도 약값은 전체 적응증 가운데 가장 낮은 가격을 적용하는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약이 가진 가장 낮은 임상적 가치가 약값이 되기 때문에 제약사는 급여 확대를 꺼릴 수밖에 없고, 결국 절박한 환자에게는 약이 닿지 못한다.
다수 암에서 효과를 보이는 암 표적 치료제 상당수가 여기에 포함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한국에서 허가받은 약의 급여 적용 기간은 평균 4년에 달한다. 다양한 적응증을 갖고 있는 대표적인 항암제 3개(키트루다, 옵디보, 엔허투)의 평균 급여 적응증 수 역시 IBP 도입 국가는 평균 10.7개인 반면 한국은 6개에 그친다. 쉽게 말해 이들 약이 외국에서는 위암, 유방암 등 다양한 암 치료에 사용되는 반면 한국에선 위암 치료에만 사용된다는 뜻이다.
절실한 환자 위해 유연한 약가 정책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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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하나의 약제에 두 가지 이상의 값을 매기는 것은 같은 약을 사용하는 환자들 간의 형평성 문제를 초래한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하나의 약제에 본인부담률을 다르게 적용하는 ‘선별 급여’ 제도를 10년 넘게 운영해 왔다. 치료 효과나 비용 대비 효과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은 적응증에 대해서는 환자들의 부담률을 높여 치료 접근성을 보장하려는 것이다.
게다가 전립샘비대증 치료제는 동일 성분이 탈모 치료제에도 사용되고 있는데, 적응증별 허가 용량 차이에 따라 제품별 가격도 달라진다. 결국 IBP는 환자 형평성을 해치는 제도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차이를 공식화하고 투명하게 관리하는 제도적 진화라는 의미다.
건강보험의 정책 목표는 단순한 재정 절감이 아니다. 환자가 가장 필요할 때, 가장 효과적인 치료를 받게 하는 것이 본래의 취지다. 복지부가 약가제도 개편안을 내놓은 지금이 IBP 도입의 골든타임이다.
‘효과성 검토’라는 애매한 표현을 넘어 구체적인 시행 계획과 일정을 명확히 해야 한다. 가장 낮은 가격이 아니라, 환자의 치료 기회를 최우선에 둔 유연한 약가정책으로의 전환이 더 이상 미뤄져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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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한 의학전문기자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