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환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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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사석에서 만난 건 딱 한 번이었다.
자리를 만든 건, 2022년 세상을 떠난 강수연 배우. 2013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얼굴 익힌 덕에 이듬해 저녁 자리에 초대받았다. 거기에 ‘깜짝 손님’ 안성기 배우도 왔다. 이전에도 인터뷰나 시사회로 마주친 적은 있다. 하지만 주름진 너털웃음을 지근거리에서 볼 수 있다니. 영화 담당 기자라 누린 호사였다.
하지만 그날 그와 나눈 말은 몇 마디 채 되질 않는다. 호탕하게 “폭탄주 제조는 내가 영화판 최고”라던 강 배우에 휩쓸려, 정신 차릴 틈이 없었다. 불콰해진 낯으로 “한국 영화가 어쩌고” 방정맞은 기자 어깨를 툭툭 다독이던 빙그레 미소만 흐릿할 뿐. 한데 그리 말이 없던 그는, 자정 넘어 이어진 자리를 끝끝내 지켰다. 한참 어린 참석자들을 일일이 챙겨 보내면서.
누구보다 한국 영화에 진심이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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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털어놓는다. 실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던 그 술자리에서 그를 살짝 삐딱하게 봤다. 주문 받으러 오시는 종업원들에게 너무 과하게 몸을 낮춘다 싶었다. ‘뭐, 저렇게까지 공손해야 할까.’ 겉치레란 의심마저 들기도 했다.
하지만 고인이 떠난 뒤 다시 돌고 도는 얘기들. 촬영 현장에서 막내 스태프도 하나하나 챙기던 배우. 연말이면 그가 살던 아파트 관리 직원들을 특급호텔에 모시고 가 대접했던 이. 예술적 성취를 떠나 인간으로도 배울 만한 대목이 차고 넘치는. 그냥 그건 안성기란 사람이 타고난 품격이었다.
물론 연기력과 인성은 별개일 수 있다. 고인이 누구보다 연기가 뛰어났다고 단언하긴 어렵다. 하지만 그처럼 꾸준하고 성실하게 영화에 이바지한 인물은 드물다. 영화계에선 특히 고인이 주연을 내려놓기 시작했던 1990년대 후반 이후 행보를 높이 산다.
“1998년 ‘미술관 옆 동물관’ 전후였던 거 같아요. 80년대는 물론, 90년대에도 온갖 시상식 주연상을 휩쓸던 양반이 조연도 거리낌 없이 출연하는 게 충격적이었죠. 주인공 도맡던 슈퍼스타가 나이 들어 주변 역할로 물러서는 경우는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떤 작은 역도 마다치 않고, 오히려 더 연기에 매진한 배우. 안성기 선배, 한 분이지 않을까요.”(영화제작자 A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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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말이지, 자기 혼자 빛나는 별은 없어. 다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거야.”
크고 높은 거목의 뿌리 지켜야
이번 겨울은 마지막 잎새를 떨군 배우들이 많다. 어느 때라고 애달픈 헤어짐이 없었겠냐만, 왠지 바람이 더 차고 시리다. 이순재 선생부터 김지미, 윤석화, 그리고 안성기까지. 뭣보다 안 배우의 부재는 K컬처를 여기까지 이끌어 왔던 한국 영화에 울려 퍼지는 레퀴엠(Requiem)으로 들리기도 한다.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광풍에 휩쓸려 앞길을 잃은 낙조(落照)의 비애처럼.
고인의 부고를 타전한 외신을 보자. 그 무게감이 다시금 다가온다. “한국 영화계의 우뚝 솟은 인물(Towering Figure)”(뉴욕타임스) “가장 존경받는(the most respected) 배우”(버라이어티) “한국 영화와 동어의(synonymous)”(USA투데이)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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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정양환 문화부장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