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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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화학 업계가 수술대에 오르기 시작한 건 작년 11월부터다. 충남 대산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의 나프타분해시설(NCC) 통폐합이 정부에 낸 ‘1호 구조조정 방안’이었다. 나머지 기업들도 정부가 마감시한으로 정한 지난달 하순 빠짐없이 ‘자구안’을 제출했다. 매년 수천억 원씩 적자가 쌓이는 상황에서 기업들도 업계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규모 설비를 사고파는 것도 엄청난 비용을 수반하는 일이어서 아무도 먼저 나서지 않았다. 올해 정부 압박 강도가 거세지자 등 떠밀리듯 나온 기업들 간 ‘빅딜’은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숫자’ 집착하다 ‘체질’ 놓쳐선 안 돼
왠지 낯이 익다. 꼭 10년 전에도 석유화학 업계는 정부 주도로 똑같은 구조조정을 시도했었다. 2016년 ‘산업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의 국내 생산 설비 규모는 860만 t 수준이었다. 당시 테레프탈산(TPA) 공급 과잉 문제가 더 두드러지긴 했어도 중국 자급률이 빠르게 올라가고 있던 에틸렌 역시 체질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정부는 분산된 설비들을 지역별 인수합병(M&A)을 통해 통합하는 방식을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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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다시 한번 석유화학 산업 구조조정에 드라이브를 거는 건 늦었지만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다만 이번에는 단순한 ‘숫자 줄이기’에 집착해선 안 된다. 일부 설비 통폐합에만 만족했다가 저가의 중국산 제품에 안방을 내어주는 최악의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생산 효율성이 상대적으로 좋은 기업에 범용 제품을 몰아줘 중국에 뒤지지 않는 가격 경쟁력을 갖추게 하고, 다른 기업은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선(先) 자구 노력, 후(後) 지원’이란 원칙도 한 번쯤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일부 산업, 일부 기업에 특혜를 줄 수는 없다는 정부 입장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산업의 존폐가 걸려 있는 비상 상황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산업연구원의 최근 보고서도 그런 시각을 담았다. 이 기관은 석유화학 구조조정이 늦어진 까닭이 기업들이 서로 눈치만 보며 버티기 전략을 고수하는 전형적인 ‘죄수의 딜레마’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정부가 선제적으로 사업 재편 대상을 발굴하고 구체적인 지원책을 실행에 옮겨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도 조언했다. 정부의 소극적 구조조정 지원은 이미 실패한 경험이 있지 않은가.
낡은 산업구조 개혁 첫 성공 사례로
작년 한국 수출은 처음 7000억 달러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슈퍼사이클에 올라탄 반도체를 빼면 오히려 소폭 줄었다. 15대 수출 품목 중 9개가 전년보다 뒷걸음질 쳤다.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의 비중은 24%를 넘어섰다. 특정 산업 의존도가 이렇게 높은 나라는 중동 산유국과 몇몇 원자재 수출국을 제외하면 대만(반도체)이나 아일랜드(의약) 정도밖에 없다. 반도체 부진으로 15개월 연속 무역적자를 냈던 게 불과 3년 전이다. 다른 산업 체질 개선이 시급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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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덕 논설위원 drake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