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사진 No. 146
사진기자로 일하다 망설여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전직 대통령을 초망원렌즈로 기록해야 할 때입니다. 400mm, 600mm, 혹은 그 이상의 렌즈를 초망원렌즈라고 부릅니다. 접근이 허용되지 않는 거리에서 피사체를 끌어당기기 위한 장비로, 보통은 프로야구장에서 외야에서 홈플레이트를 찍을 때 쓰입니다. 이 렌즈가 권력을 향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경우는 대체로 상황이 좋지 않을 때입니다.
평소 대통령을 촬영하는 기자들은 청와대 출입기자들입니다. 경호 동선 안, 사전에 조율된 위치에서 촬영하고, 이때 쓰는 렌즈는 보통 70-200mm 정도면 충분합니다. 얼굴만 당겨 찍기보다는 몸이 적당히 포함된 사진이 필요하고 촬영 거리도 극단적으로 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론은 나빠지고 뉴스성은 커지는데 가까이 갈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기자들은 자연스럽게 초망원렌즈를 꺼냅니다. 셔터를 누르기 전엔 늘 비슷한 생각이 듭니다. 이 장면을 꼭 남겨야 할까. 이건 기록일까 엿보는걸까.
직업이니까 찍습니다. 그렇다고 마음이 편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피사체인 전직 대통령이 이 위기를 잘 넘겼으면 하는 마음과 기록해야 한다는 책임이 부딪히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 장면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반응도 엇갈립니다. 박수를 보내는 이도 있고 거친 말을 던지는 이도 있습니다. 그래서 초망원렌즈로 찍힌 대통령의 사진에는 늘 설명하기 어려운 긴장감이 남습니다.
광고 로드중
이번 주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대통령이 미국 특수부대에 의해 체포돼 미국으로 압송됐습니다. 첫날까지만 해도 그는 ‘해피 뉴 이어’라는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은 말할 수 있는 대통령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퍼프 워크(perp walk)에서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퍼프 워크는 범죄 피의자가 언론 앞을 걷는 장면을 뜻합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포토라인입니다. 이 장면에서 사진기자들이 선택한 것은 클로즈업이 아니라 초망원렌즈였습니다. 이 거리에서는 뭔가를 보여주기 어렵습니다. 그저 보여지게 됩니다.
2026년 1월 5일(월) 뉴욕에서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맨해튼 연방지방법원으로 이송되기 위해 헬리콥터에 오르고 있다. 방송사 헬기에서 촬영한 모습. 이 장면에서 인물은 말하지 않는다. 보여질 뿐이다. WABC 제공·AP 뉴시스)
영상 속에서 마두로 대통령은 총을 멘 미국 공권력 사이에서 수갑을 찬 채 이동하고 있습니다. 초망원렌즈로 촬영된 사진 속에서 마두로 대통령과 부인은 초라해 보입니다. 무채색의 옷차림, 위축된 몸짓, 그리고 강하게 압축되어 배경이 사라진 화면은 보는 이들에게 초현실적인 인상을 줍니다. 이 사진은 ‘권력을 잃었고, 이제 누군가의 손에 운명이 좌우될 것’이라는 예측을 하게 합니다.
경호원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낯선 공권력이 대신하고 있다는 점도 베네수엘라 국민들에게 더욱 공포스럽게 다가왔을 것입니다.
마두로 대통령의 이송 모습을 보도한 베네수엘라 신문.
광고 로드중
대통령이 초망원렌즈로 찍히는 순간은 대체로 권력이 불안정해졌을 때입니다. 카메라와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여론과의 거리도 함께 멀어집니다. 이슈는 커지지만 공보는 줄고 공개 메시지는 사라집니다. 그러면 기자들은 긴 렌즈로 그 빈자리를 메웁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사진은 대개 비슷한 인상을 남깁니다. 불안하고 무겁고 뭔가 끝나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한남동 윤석열 대통령 사저를 찍기 위해서 남산에서 800미리 렌즈가 사용되었다. 가까이 갈 수 없을 때, 기록은 이 거리에서 시작된다. 전영한 기자
변영욱 기자 cu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