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부로 가득한 이 편지는 고(故) 피천득 작가(1910~2007)가 1976년 아들에게 보낸 편지 일부다. 딸 ‘서영이’에 대한 극진한 사랑으로 널리 알려진 피천득이지만, 아들이라고 그 마음이 달랐을까. 그의 애정 어린 편지들이 지난달 12일 출간된 피천득 수필 선집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민음사)에 실리며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번 선집에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편지 7편이 새로 수록됐다. 피 작가는 장남 세영, 차남 수영, 막내딸 서영까지 2남 1녀를 뒀다. 수록된 편지는 피수영 박사가 미국 미네소타주 덜루스클리닉에서 신생아 전문의로 일하던 시절 보낸 글들이다. 편지에서 작가는 수필에서 보여준 특유의 섬세한 미문 대신 “담배 끊어라” “외식하지 말라”는 소박한 당부를 반복한다. 절제된 문장과 검약 정신은 딸에게 보였던 로맨틱한 애정과는 또 다른 결의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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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끝자락에 실린 출간 기념 인터뷰에서 피수영 박사는 “아버지는 딸을 사랑했지만 아들인 저도 충분히 사랑을 받았다. 불만은 없다”며 웃었다. 실제로 부자 관계 역시 각별했다고 한다. 아들이 미 유학 시절 800달러 월급 가운데 500달러를 아버지와의 통화에 썼을 정도였다. 피 박사는 서울아산병원에서 국내 최초로 신생아 의료 체계를 정착시킨 인물. “인생은 작은 인연들로 아름답다”는 문장을 묘비에 남긴 아버지와 가장 연약한 생명들을 평생 돌본 아들의 삶은 조용히 조응한다. 피 작가의 저작 관리 역시 피 박사가 맡고 있다.
책을 기획한 박혜진 부장은 “세계문학전집이라는 ‘선별된 정전’ 안에서 피천득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그의 수필을 ‘한국적 정서’의 표본에 가두지 않고 근대 산문 문학이 도달한 하나의 보편적 형식으로 읽어보자는 제안”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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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