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성희롱 사건에 빈출 ‘아저씨’ 타령 신체 접촉은 줄어도 언어적 성희롱은 여전 한참 위 상사와 예술 논하고픈 여성 없어 착각 버리고 하지 말아야 할 말 시험 말라
정소연 객원논설위원·변호사·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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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 또 ‘나의 아저씨’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40대 중년 남성이 20대 여성 주인공과 감정적인 교류를 하는 내용으로, 직장 내 성희롱 사건 빈출작이다. 대개 사건 기록에서 “내가 너의 아저씨가 될 수는 없을까”, “너는 나의 아이유(극 중 지안 역)야” 같은 문자메시지가 등장한다. 이 드라마의 팬이었던 동료 말로는 이렇게 ‘추잡스럽게’ 인용될 작품이 아니라는데, 내가 지금까지 본 ‘나의 아저씨’ 성희롱 사건을 한 손으로 다 셀 수 없다. 같은 창작자 입장에서 드라마 관련인들이 안쓰러울 지경이다.
‘나의 아저씨’ 외에는 불륜이 알려진 예술인들, 성폭력 가해자로 확정 판결을 받은 모 영화감독 등이 자주 언급된다. 가해자들은 피해자에게 “O 배우 일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O 영화감독의 영화를 보았느냐, 좋지 않느냐”고 말하며 접근한다. 피해자가 직장 내 성희롱으로 신고하면, 부하 직원과 문화적으로 잘 통할 것 같아 교류를 시도했을 뿐이라거나 원래 예술에 관심이 많았다거나 영화나 드라마를 자주 본다는 변명을 한다. 딸이 좋아하는 배우라, 큰 상을 탄 작품이라 다른 직원의 의견이 궁금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나는 그의 딸이 그 배우를 좋아하지 않으리라는 데 돈도 걸 수 있다.
단언컨대, 직급도 나이도 한참 위인 상사와 굳이 문화예술을 논하고 싶은 여성 직원은 없다. 설령 드물게 있더라도 그 상대가 당신은 아닐 것이다. 논하고 싶은 예술가가 40대 남성의 혼란을 담은 작품이나 성 관련 추문으로 신문 사회면에 이름을 올린 남성 창작자들일 리도 없다. 당신은 예외가 아니다. 당신은 그녀의 ‘아저씨’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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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공적 자리에서 실수로라도 상급자를 “그 애”나 “그 남자”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다. 사회생활을 할 만큼 하고도 이성인 부하 직원에게 불쑥 성적인 대화를 시도하는 ‘사교성’을 고치지 못했다면, 그에게 필요한 것은 너그러운 시선이 아니라 엄격하고 집중적인 재사회화다.
성희롱과 성폭력에 대한 지속적인 사회적 교육과 관련 법령의 강화로 신체 접촉이 직장 내 성희롱이라는 인식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형법상 강제추행으로 처벌이 어려운 언어적 성희롱은 여전하다. 오히려 가해자들이 그 한계를 계속해서 시험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예를 들어, 직장 동료들에게 성생활에 대한 질문을 하지 말라고 교육했더니 젊은 여직원에게 “내가 아내랑 10년째 섹스리스다” 따위의 말을 한다. 그랬다가 성희롱 신고가 접수되면 신고인에게 물어본 게 아니고 내가 내 사생활을 말한 것뿐인데 이게 어떻게 성희롱이냐고 변명한다.
가해자들은 직장 내 성희롱 가능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끊임없이 경계를 두드려 확인받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예술작품을 언급하는 언어적 성희롱도 경계 탐색의 일환이다. 여기에는 허락된 범위 안에서는 기필코 성희롱을 하고야 말겠다는 어떤 의지, 성적 불쾌감 유발과 그로부터 얻는 만족감을 포기할 수 없다는 집념, 과거에는 가능했던 가해를 편히 하지 못하게 된 현실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그러나 직장 내 성희롱은 관계의 우위와 위력에 관한 문제다. 당신의 성적 매력이나 사교성에 대한 도전이 아니다. 직장 내 성희롱 금지는 성희롱인지 긴가민가한 말까지는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지 말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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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연 객원논설위원·변호사·SF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