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피지컬 AI’ 시대 가상공간 속 AI 물리적 세계로 나와… 공장은 이미 로봇, 자율체제로 운영 인간은 점차 위험-반복노동 벗어나… 반도체 등 제조기술 축적한 한국은 피지컬 AI 확산에 유리한 조건 갖춰… 美 클라우드AI 의존 벗어날 돌파구
맹성현 태재대 부총장·KAIST 명예교수
품질 검사는 고속 인공지능(AI) 카메라가 실시간으로 한다. 작업 속도가 잠시 느려지자 제어 시스템이 즉시 생산 흐름을 수정한다. 대기하던 로봇팔이 추가 작업을 분담해 제품의 흐름은 다시 매끄럽게 이어진다. 밖에서는 자율주행 배송 차량이 완성된 제품을 싣고 출발하고, 건물 외벽의 드론이 태양광 패널을 점검한다. 공장 사무실에서는 휴머노이드 비서가 회의실 탁자에 커피와 생수를 준비하고 화면 스크린을 켠다.
이 장면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로봇과 대형 AI 모델의 융합, 그리고 하드웨어 효율의 발전은 ‘피지컬 AI’ 시대를 앞당기고 있다. 업계에서는 향후 5년 안에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 피지컬 AI가 본격 도입될 것으로 전망한다. 한때 수십 년은 걸릴 것으로 여겨졌던 휴머노이드 로봇이 몇 년 안에 산업 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 셈이다. 대규모언어모델(LLM)과 강화학습의 결합, 로봇 제조 비용의 급락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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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변화 속에서 한국에는 특별한 기회가 있다. 우리는 ‘제조 강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반도체, 자동차, 조선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기술을 축적해 왔다. 피지컬 AI는 바로 이 제조 현장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울 기술이다. 실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하이닉스 등은 AI 기반 스마트 팩토리 구축에 적극 투자하고 있으며 정부도 데이터 센터와 로봇 인프라 확충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하드웨어 역량, 제조 현장의 풍부한 데이터, 정부의 AI 인프라 투자가 결합되면 한국은 피지컬 AI의 ‘테스트베드’이자 수출 강국이 될 수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한국이 지능을 새로운 수출품으로 만들 수 있다”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피지컬 AI가 미국 중심의 ‘클라우드 AI’에 대한 의존 구조를 벗어날 돌파구라는 점이다. 공장, 자율주행차, 로봇처럼 ms(밀리초·1ms는 1000분의 1초) 단위의 판단이 필요한 환경에서는 현장 배치형 ‘에지(Edge) 컴퓨팅’이 필수다. 디지털 환경에서 클라우드 AI가 전체를 조율할 순 있지만 즉각적인 판단과 실행은 현장 AI가 독자적으로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AI 패권 경쟁에서 ‘클라우드 AI’에 종속되지 않고 독자 솔루션을 개발할 토대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기업은 AI 도구 도입을 넘어 생산, 경영 등 전체 프로세스를 AI 중심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에 따르면 AI를 사용하는 기업의 88%가 AI를 도입했지만 실질적 성과를 거둔 기업은 6%에 불과했다. 성공 기업들은 고객 접점부터 생산, 배송, 사후 관리까지 AI를 깊이 통합했다. 개인과 기업은 AI를 두려워하기보다 ‘오케스트레이터(orchestrator)’로서 AI를 지휘하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정부는 인프라 구축과 함께 데이터 주권 확보, 안전 기준 마련, 노동 전환 교육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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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컬 AI 시대가 코앞에 와 있다. 한국은 제조 노하우, 첨단 반도체 기술, 빠른 네트워크, 민첩한 기업 문화로 이 변화를 주도할 조건을 갖췄다. 이제 필요한 것은 AI를 새로운 동료로 받아들이고 인간과 기계가 공(共)진화하는 미래를 설계하는 전략적 상상력이다. 피지컬 AI의 미래는 우리가 사는 물리적 공간, 즉 공장, 도로, 건물, 집 등에서 펼쳐질 것이다.
맹성현 태재대 부총장·KAIST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