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천사’ 늘었다 고창 기부자 5년째 총 1125만원 논산 키다리 아저씨 20여년 총 12억 거창 7인의 천사는 대잇는 기부… 잇단 대형재난속 익명기부 늘어
나눔온도 79.7도… 100도 채워주세요 29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사랑의 온도탑 나눔온도가 79.7도를 가리키고 있다. 목표 모금액(4500억 원)의 1%인 45억 원이 모일 때마다 온도가 1도씩 올라간다. 모금은 내년 1월 31일까지 진행된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 폐지 줍는 가장부터 수억대 ‘키다리 아저씨’까지
23일 부산 북구 덕천지구대에 한 기초생활수급자가 두고 간 김치와 현금 3만5000원. 부산 북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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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으로 시작된 기부가 수년간 이어지며 누적 금액이 수억 원에 이른 사례도 있다. 연말연시마다 억대 기부금을 보내는 충남 논산시 ‘키다리 아저씨’는 2001년부터 최근까지 총 12억2300만 원을 맡기면서 한 번도 얼굴을 드러낸 적이 없다. 그는 “아내의 고향인 논산 지역 어린이와 청소년이 보다 건강하게 성장하는 데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고 한다.
이달 3일 경남 거창군 가조면 행정복지센터 앞에는 ‘7인의 천사’로 불리는 주민이 두고 간 쌀 포대가 쌓여 있다. 경남 거창군 제공
27년째 쌀을 기부하는 제주 서귀포시 ‘노고록(‘넉넉하다’의 방언) 아저씨’도 항상 목도리와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가린 채 나타난다. 그가 보낸 쌀을 지원받은 강모 할머니(83)는 “그 양반 덕에 명절이나 연말이면 외로운 마음보다 노고록한 마음이 앞선다”고 전했다.
● “불황·재난 뚫고 ‘내적 효능감’ 성숙한 문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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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째 경남 창원시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 입구에 국화꽃 한 송이와 함께 기부금을 놓고 사라지는 남성은 늘 발신자 번호 표시 제한으로 전화를 걸어 기부 사실을 알린다. 그렇게 맡긴 돈이 총 7억4600만 원에 이른다. 한 기부단체 직원은 “멀리 차를 세우고 걸어오는 기부자를 볼 때면 숨바꼭질하는 기분이 들지만, 그 수고로움 속에 담긴 진심을 알기에 굳이 뒤쫓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올해 유난히 익명 기부가 많았던 이유를 잇단 대형 재난에서 찾았다. 큰 피해를 불러온 재난을 안타깝게 지켜보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하고 있다”는 자신의 신념을 조용히 확인하려는 마음이 기부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강철희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부자 개인보다 수혜 대상이나 사회적 상황이 더 주목받기를 바라는 태도도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선행이 또 다른 선행을 낳는 선순환이라는 분석도 있다. 박철 고려대 경영학부 교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타인의 선행을 확인한 뒤 이를 따르는 ‘친절 모방 효과’도 익명 기부의 전염성을 높이고 있다”고 했다. 서지민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고액후원팀장은 “젊은 세대 사이에선 예우 공간에 이름을 남기는 것마저 마다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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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박영민 기자 minpress@donga.com
거창=도영진 기자 0jin2@donga.com
서귀포=송은범 기자 seb1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