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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최고의 스포츠 뉴스, 1000만 러너 시대[유상건의 라커룸 안과 밖]

입력 | 2025-12-29 23:09:00

14일 열린 월미 알몸 마라톤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힘차게 출발하고 있다. 인천=뉴스1


유상건 상명대 스포츠ICT융합학과 교수

세밑에는 올해 걸어온 날들을 돌아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스포츠계도 다사다난했다. ‘배구 여제’ 김연경이 은퇴했고, 손흥민은 미국으로 무대를 옮겼으며, 프로야구는 2년 연속 관중 1000만 명 시대를 열었다. 안세영은 배드민턴의 역사를 새로 썼고, 게임 리그오브레전드(LoL·롤)에서는 월드 챔피언십 3연패라는 금자탑을 세웠다.

국내 스포츠 현상 중 가장 의미 있는 한 가지를 꼽는다면 단연 러닝의 폭발적 성장이다. 달리는 사람들의 물결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도심의 풍경을 바꿨다. 스포츠는 직접 행위한다는 의미가 큰데, 그런 점에서 러닝족이 1000만 명을 넘어섰다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마라톤은 어떤 종목보다도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재미보다는 수행이라는 측면이 더 강하다. 마라톤을 끝낸 후 얻는 만족감은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지만 숨이 턱까지 차는 과정은 고통 그 자체다. 그래서 미국의 백인 중상류층이 마라톤을 선호한다는 분석도 있다. ‘보라, 우리는 신체를 단련할 때도 이렇게 인고의 시간을 보낸다.’ 자기 관리의 상징이라는 뜻이다.

무엇보다도 달리는 행위는 개인의 성찰과 관련이 있다. 필자는 골치 아픈 일이 있을 때 무조건 뛴다. 팔을 앞뒤로 휘젓고 발을 내딛는 단순한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복잡했던 일들이 저절로 정리돼 해결책이 떠오른 적이 많다. 실제로 달리기 관련 책에는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내용이 많다. 성찰과 명상의 단계에 이를 수 있는 달리기가 인기를 얻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성숙해졌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는 어디선가 뛰고 있고, 마라톤대회는 참가 신청을 받자마자 마감되는 ‘피케팅’(피 튀는 티케팅 경쟁) 현장이 됐다. 다만 달릴 때도 경쟁해야 한다는 점이 답답하기도 하고, 몇 가지 산업적·문화적 문제도 있다.

근원적으로 달리기는 팬티와 러닝셔츠, 운동화만 있으면 되는 가장 값싼 스포츠였다. 그러나 지금은 ‘완성형 러너’가 되기 위한 관련 산업 규모가 2조 원을 넘는다고 한다. 신발, 의류, 선글라스, 모자 같은 액세서리, 그리고 스마트워치까지 더해지며 비싼 스포츠가 됐다. 점점 진입 장벽이 높아지는 듯싶다.

러닝 열풍에 따른 안전 문제가 불거지고 민원도 제기되고 있다. 커뮤니티에 소속돼 달리는 ‘러닝 크루’가 대세인데, 무단횡단이나 도로 점유 등 문제가 꽤 있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단체 러닝 제한 권고를 내렸다고 하니 꽤나 불편했나 보다. 흥미로운 것은 ‘웃통 벗고 뛰는 남자’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논쟁이다. 한가로이 가족과 공원을 거니는데 숨소리를 거칠게 내쉬며 한 무리의 남자들이 육체를 드러내고 뛰는 모습은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한편에서는 ‘몸을 단련하느라 수고했다’며 관대하게 봐주는 시선도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말의 해’답게 새해에도 건강하게 뛸 수 있기를 소망한다. 무엇보다도 새해 초 운동을 결심한 뒤 ‘또 작심삼일이었다’고 후회하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유상건 상명대 스포츠ICT융합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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