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임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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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경기지사 시절 마지막으로 결재한 게 ‘일산대교 통행료 무료화’다. 민자 사업으로 건설된 일산대교는 국민연금이 2700억 원을 투자해 30년 운영권을 갖고 있다. 그런데 통행료가 비싸다며 국민연금의 팔을 비틀어 헐값에 운영권을 강제 회수하려고 한 것이다. 일부 지자체 주민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국민 노후 자금을 허문다는 비판이 컸다. 법원이 제동을 걸어 무료화는 무산됐지만, 이 정부 들어 국민연금을 흔들고 넘보려는 시도가 노골화되고 있다.
이사장 “청년 공공주택 투자하겠다”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출신인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지난주 취임 일성으로 연금 자산을 청년 공공주택에 투자하겠다고 했다. “공공주택에 투자해 결혼과 출산을 촉진하고 인구 절벽을 극복하겠다”는 것이다. 청년 주택 공급이 시급하지만 정부가 국가 재정으로 해결할 문제이지 투자 수익을 추구하는 국민연금이 나설 일이 아니다. 게다가 연금의 투자 결정권은 정부 부처와 각계 대표로 구성된 기금운용위원회에 있다. 이미 문재인 정부에서 공단 이사장을 지냈던 그가 이를 모를 리 없는데도, 기금 운용의 독립성과 수익성을 해치는 위험한 발상을 꺼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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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가 “이사장 개인 의견”이라며 선을 그었지만, 공공주택 투자 아이디어는 신호탄에 불과할 수 있다. 이미 정부는 1500원이 코앞인 원-달러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국민연금을 소방수로 끌어들였다. 외환 당국과 함께 협의체를 꾸린 국민연금은 전략적 환헤지 기간을 내년까지 늘리고, 한국은행과의 통화스와프도 연장했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달러를 시장에 풀어 환율 상승을 억제하겠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 방식이 국민연금의 중장기 수익률을 낮출 수 있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연구원은 12년간 투자 포트폴리오를 분석해 헤지를 하지 않고 환위험에 100% 노출되는 것이 장기 수익률에 최적이라고 권고했다. 한미 간 성장률과 금리 차이, 통화량 팽창, 대미 투자 수요 확대 등 환율 상승을 이끄는 구조적 문제가 겹겹인데 연금 자산만 축낼까 우려된다.
환율·주가 방어도 동원… 불신만 더 높여
게다가 ‘코스피 5,000’을 내건 정부와 민주당은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 확대를 거듭 압박하고 있다. 1361조 원의 기금 중 몇 %만 투자를 늘려도 주가 상승엔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을 계속 줄여 왔다. 보험료 수입보다 연금 지출이 더 많아지는 시점이 되면 연금 지급을 위해 주식을 팔아야 하는데, 매물 폭탄이 증시에 큰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당장 5년 후다. 실물경제의 뒷받침 없이 올해와 같은 증시 상승세가 계속될 거라고 장담하기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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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