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카를로스 고리토 브라질 출신 방송인·사업가
처음엔 당연히 오타인 줄 알았다. 누가 토요일 아침 8시부터 DJ와 함께 음악을 즐긴단 말인가. 하지만 내 의아한 표정을 본 친구는 웃으며 설명했다. 요즘 유행하는 ‘모닝 레이브’라고 했다. 클럽에서 밤을 새우는 대신, 카페 같은 공간에서 오전에 댄스 파티를 여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맥주 대신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술안주 대신 샌드위치나 김밥 같은 요깃거리가 제공된다. 사람들은 음악에 맞춰 몸을 풀고 스트레스를 날린 뒤 오전 10시면 개운하게 일상으로 돌아간다.
사람들이 과연 많이 올까 의아했는데, 실제로 찾아간 한옥 파티장은 새벽부터 참가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더 놀라운 장면은 파티가 끝난 이후였다. 어떤 사람은 이제 러닝 크루를 만나 한강변을 뛸 예정이라며 운동화 끈을 조였고, 또 다른 누군가는 주말 원데이 클래스를 들으러 간다며 서둘러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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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25년의 지금, 서울의 생체시계는 완전히 달라졌다. 불빛은 더 이른 시간에 꺼지고 있다. 전력 부족 때문은 아니다. 이 나라 사람들이 하루를 쓰는 방식 자체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회식 문화다. 한때 ‘회식’은 오후 7시에 시작해 자정까지 이어지는 소주 마라톤이었다. 1차 고깃집, 2차 호프집, 3차 노래방이 정석 코스였고, 신입사원의 주량과 노래 실력은 팀워크를 가늠하는 일종의 지표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팀 점심’이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근사한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거나, 다 같이 영화나 공연을 즐기는 문화가 다음 날의 숙취와 피로를 전제로 한 밤샘 회식을 대신하고 있다.
러닝 크루의 유행 역시 주목할 만하다. 매일 아침 형형색색의 러닝복을 입은 사람들이 대열을 이뤄 서울을 가로지른다. 예전 같았으면 술잔을 부딪치며 모여 있을 무리가 이제는 스마트워치를 비교하고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경로를 공유하며 모여 있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무엇이 있을까.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만 그중 하나로 흔히 거론되는 것이 ‘갓생(God-生)’의 유행이다. 신이 살 법한 삶이라는 뜻의 갓생은, 건강과 자기 계발에 투자하는 것이 곧 미래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믿음을 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역시 이런 변화를 가속화했다. 재택근무를 경험하며 사람들은 출퇴근에 쓰던 시간을 운동이나 휴식에 돌리기 시작했고, 자기 자신에게 쓰는 시간의 가치를 새삼 실감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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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 사회가 하나의 큰 전환점을 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밤의 에너지를 아침으로 옮기는 이 실험은 단순한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넘어 일과 삶, 건강과 성공을 바라보는 가치관 자체가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때 서울은 태양이 아니라 네온사인이 지배하는 도시였다. “서울은 밤이 더 아름답다”는 말을 자주 들었고, 실제로 그랬다. 서울의 밤은 지금도 여전히 아름답다. 하지만 이제 이 도시의 사람들은 밤의 아름다움보다 아침이 품은 가능성에 더 큰 가치를 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나쁘지 않은 변화일 것이다.
어쩌면 올해 크리스마스에 산타클로스가 한국인들을 만나고 싶다면 24일 밤에 굴뚝으로 내려와서는 안 될 것 같다. 모두가 새벽 운동을 위해 일찍 잠든 탓에 선물을 전할 사람이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대신 러닝화를 신고 새벽부터 한강변을 달리는 러닝 크루를 따라잡아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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