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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회사인척 달러 빼돌렸다…외환부당 유출 등 31곳 세무조사

입력 | 2025-12-23 16:46:00

나눠 먹기식 수주, 슈링크플레이션 기업도 조사 대상




안덕수 국세청 조사국장이 23일 세종시 정부세종2청사에서 가격담합 등 불공정행위로 물가 불안을 부추긴 시장 교란행위 탈세자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히고 있다. 2025.12.23. 뉴시

A기업은 한국 기업이지만 해외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뒀다. ‘외국 기업’은 국내에 외화를 예치할 수 있는 ‘대외계정’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A기업은 국내에서 조달한 돈을 해외 페이퍼컴퍼니와 거래하는 척하며 대외계정을 이용해 70억 원 규모의 달러를 해외로 빼돌렸다. 국내 회사가 외국 회사인 척을 하는 자기 회사 계좌를 이용해 신고 없이 달러를 해외로 빼돌린 것이다.

원-달러 환율이 1480원을 넘어서며 물가 상승, 산업계 부담 가중 등의 시장 불안을 불러오는 상황에서 국세청이 편법적으로 외화를 유출해 환율 변동성을 키운 기업들을 대상으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11개 기업이 해외로 부당 반출한 외화 규모만 5000억~6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비뽑기 등으로 낙찰 순번을 정해 ‘나눠 먹기식 수주’에 나선 기업들과 가격은 유지하는 대신 용량을 줄인 ‘슈링크플레이션’ 프랜차이즈 등도 조사 대상이 됐다.

● 고환율 부추기는 외환 부당 유출 정조준

23일 국세청은 ‘시장 교란 행위 탈세자’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조사 대상은 △외환 부당 유출로 환율 불안을 유발하는 기업 △가격 담합 등 독과점 기업 △할당관세 편법 이용 수입 기업 △슈링크플레이션 프랜차이즈 등 31개 업체다. 이들의 전체 탈루 금액은 1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세청은 우선 편법적으로 국부를 유출한 ‘외환 부당 유출 기업’ 11곳을 대상으로 탈루 혐의를 정밀하게 분석할 계획이다. 법인자금을 편법으로 유출해 고가의 해외자산 등을 취득하거나 대외계정을 악용해 국외로 외환을 부당하게 빼돌린 기업들이 타깃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해당 기업들의 탈루 혐의 금액은 총 7000억∼8000억 원 수준이고, 이들이 해외로 부당 반출한 외화 규모는 5000억~6000억 원 규모”라고 설명했다

국내 전자제품 제조업체 B사는 해외에 현지 법인을 설립하고, 제품 생산에 필요한 원천 기술을 제공했다. 이 과정에서 현지 법인으로부터 받아야 하는 기술 사용료를 낮춰 1500억 원 상당의 외화 자금을 국내로 들여오지 않았다. 이 회사의 사주 일가는 기업공개(IPO) 관련 내부 정보를 받아 대량의 주식을 미리 사들였고, 2021년 코스피 상장으로 수십억 원의 시세 차익을 얻었지만 증여세 신고도 누락한 것으로 드러났다.

외국 국적의 한국인인 이른바 ‘검은 머리 외국인’들도 국세청의 조사를 피하지 못했다. C 씨는 한국에서 외국인 지위를 이용해 개설한 대외계정으로 수출 대금 등을 받고 개인소득세 신고를 누락했다. 이를 감추기 위해 법인을 만들어 수십억 원의 자금을 빌려주고, 부산 해운대에 있는 고가의 펜트하우스를 법인 명의로 인수하기도 했다.

● 가격 담합, 슈링크플레이션 꼼수에도 ‘철퇴’

가격 담합 등으로 가격을 부풀린 독과점 기업 7곳도 이번 세무조사에 포함됐다. 조사 대상 업체들은 사다리 타기, 제비뽑기 등을 통해 낙찰 순번을 정해 나눠 먹기식 수주를 하면서 들러리 업체에는 입찰 포기의 반대급부로 계약 금액의 10%에 상당하는 금액을 담합사례금으로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세청은 치킨, 빵 등을 판매하면서 가격은 그대로 두고 중량만 줄이는 ‘용량 꼼수’로 이익을 거둔 프랜차이즈 업체들도 조사한다. 외식 프랜차이즈 가맹본부인 D사는 가격은 그대로 유지하고 음식 중량을 줄여 거둔 이익을 사주 일가가 운영 중인 계열법인의 광고선전비 지원에 사용했다. 임원에게 인건비를 과다 지급한 뒤 사주가 일부를 현금으로 되돌려 받는 수법으로 법인 자금을 유출하기도 했다.

할당관세를 적용받아 원재료를 저렴하게 수입할 수 있는 혜택을 누리면서도 이를 판매가격에 반영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익을 극대화한 기업도 조사 대상이 됐다. 한 업체는 사주의 자녀가 운영하는 특수관계법인을 유통 과정 중간에 끼워 넣고, 관세 감면을 받은 원재료를 저가에 공급하는 등 부당하게 이익을 나눈 사실이 적발됐다.

국세청 관계자는 “경제 불안정성을 확대시키는 다양한 시장 교란 행위에 엄정한 대응이 필요하다”며 “시장 불안을 틈타 더욱 교묘해지는 탈루 행위에 대해 다시 한번 경종을 울려, 공정한 시장 질서를 확립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세종=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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