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도비(주)
대형 설비가 인력과 체인블록을 이용해 건물 내부 계단을 통해 반입되고 있다. 대전도비 제공
장비 투자가 만든 차별화된 경쟁력
대전에 위치한 대전도비㈜는 반도체·원전·연구소 등 현장에서 중량 초정밀 설비의 운반과 설치를 전문으로 하는 강소기업이다. 500㎏부터 50t에 이르는 장비를 안전하게 이동시키고 밀리미터 단위로 정확히 안착시키는 작업은 단순해 보이지만 현장 동선 파악부터 장애물 회피, 완벽한 수평 구현까지 고도의 현장 판단력과 전문성을 요구한다.
광고 로드중
최상우 대표는 “임대 장비는 당장의 비용은 줄일 수 있지만 돌발 상황 대응력이 떨어지고 장기적으로는 신뢰 구축에 한계가 있다”며 “자체 장비 확보는 비용이 아닌 투자”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런 투자 철학은 LG화학 및 LG에너지 솔루션 기술연구원 등 주요 거래처에서 거의 독점에 가까운 신뢰를 확보하는 토대가 됐다. 현장 효율과 안전을 동시에 높이는 장비 운용 능력이 곧 경쟁 우위로 연결된 셈이다.
원전·연구소·의료기관 등 특수 시설은 일반 산업 현장과 차원이 다른 진입 장벽을 갖고 있다. 작업 투입 전 1시간 이상 의무 안전 교육을 이수해야 하며 지정 병원에서 신체검사까지 거쳐야 비로소 출입 자격이 주어진다. 작업 가능 시간 역시 엄격히 제한돼 있어 현장 경험 없이는 공정 난이도를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특히 국가 연구소 현장은 내부 연구 내용 자체가 고도로 전문화돼 있고 기밀 자료도 많아 외부인이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영역이다. 작업 업체 선정 과정부터 남다르다. 내부 박사급 연구 인력들의 논의와 추천을 거쳐 결정되며 한 번 신뢰를 잃으면 재진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기술력만큼이나 보안 준수와 현장 이해도가 중요한 이유다.
오염 관리 기준이 엄격한 현장에서는 작업 도구 하나까지 철저히 검증받아야 한다. 예컨대 반도체 공장이나 청정 연구실에서는 특정 재질의 공구 사용이 금지되고 작업복과 신발 착용 규정까지 따로 존재한다. 이런 세부 기준을 숙지하지 못하면 예상보다 비용과 시간이 크게 늘어나고 심한 경우 작업 중단까지 초래한다. 이런 환경일수록 오래 축적된 노하우와 판단력이 곧 경쟁력이 되며 신규 진입자가 쉽게 따라올 수 없는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다.
광고 로드중
확장보다 안정, 선택과 집중의 경영
크레인을 활용해 대형 설비를 건물 외벽 개구부로 인양 및 설치하는 작업 현장.
이는 단순한 보수주의가 아니라 현실에 기반한 전략적 판단이다. 해외 프로젝트는 높은 수익성을 약속하지만 장비 운송비와 현지 체류비 등 숨은 비용이 크고 국내 주력 현장에 공백이 생긴다. 실제로 말레이시아의 현장 제안은 이런 이유로 보류했으며 제주도처럼 물류 효율이 확보되는 지역 위주로 작업 범위를 조율하고 있다. 현재 인력과 장비로 감당 가능한 수준에서 완성도를 유지하는 것이 회사의 지속가능성을 높인다는 판단이다.
12명의 정직원 가운데 상당수가 20∼30년 장기근속자인 점도 이런 경영 방식의 결과다. 최 대표는 “급격한 인력 확충보다는 숙련된 팀원들과 안정적으로 기술을 전수하는 게 품질 유지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기술 전수와 품질 유지를 위해서는 안정적인 조직 운영이 우선이며 최 대표의 아들 역시 기술을 이어받아 타 지역에서 독립 운영 중이다. 가업 승계 구조까지 염두에 둔 장기 관점의 경영이 대전도비의 정체성이다.
광고 로드중
“30년 외길 현장기술…무사고로 신뢰 쌓아”
대전도비㈜ 최상우 대표 인터뷰
최상우 대표
“당시 대전에 크레인이 고작 두 대뿐이었습니다. 사우디에서 익힌 기술이면 충분히 승부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죠.”
최 대표는 대한통운 소속으로 기계 운반 전문 업무를 시작했고 거래처들이 그의 기술력과 성실함을 알아보면서 자연스럽게 독립의 길을 걷게 됐다. 과세특례 사업자로 출발해 일반사업자를 거쳐 2023년 법인을 설립하며 현재 대전도비·대전중량·대전도비용역 등 3개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최 대표가 강조하는 이 업종의 본질은 명확하다. “도비업은 일본어에서 유래한 용어로 국내에 공식 직종 분류조차 없습니다. 학문으로 배우거나 자격증으로 증명할 수 없는 영역이죠. 현장마다 구조와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표준화 자체가 불가능하고 결국 현장에서 쌓은 경험이 기술의 전부입니다.”
그는 관리 가능한 규모 내에서 품질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라 믿으며 안전사고 없이 신뢰를 지속하고 기술을 다음 세대로 온전히 전수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 30년 외길이 만든 신뢰가 곧 대전도비의 가장 큰 자산이다.
신승희 기자 ssh0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