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명을 살리는 로드 히어로] 동아일보-채널A 2025 교통안전 캠페인 〈19〉 생명 지키는 ‘스마트 신호등’ 에센바흐市, 카메라-AI로 실시간 분석… 사각지대 충돌 경고해 사고율 50% 뚝 건널목 초록불 자동 연장까지… “교차로가 AI 컴퓨터나 다름없어”
독일 바이에른주 에센바흐의 교차로에 설치된 ‘미래의 신호등’. 보행자와 차량, 자전거 등의 이동 속도와 영상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소방차가 멈추지 않고 달릴 수 있도록 신호를 제어한다. 에센바흐=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
● 소방·구급차에 ‘무정차 통과’ 우선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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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범 운영 초기엔 차량과 교차로가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건물이 많은 도시 특성상 신호가 굴절하면서 긴급차량이 접근하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것. 현재는 이동통신 기지국과 와이파이 네트워크를 통합한 덕분에 이 문제를 해결했고, 안정성이 높아진 상태다.
긴급차량에 신호를 우선 부여하는 이 시스템은 스마트 교차로 시범 운영 동안 지역민의 큰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바이에른주는 우선 신호 부여 고도화와 안정성 검증을 위해 향후 총 18개 교차로로 테스트를 확대할 예정이다.
● 사각지대 위험 감지해 50% 사고 감축
스마트 교차로의 또 다른 핵심 기능은 ‘충돌 경고 신호’다. 보행자와 자전거, 차량이 뒤섞이는 교차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명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사람 키 높이의 주황색 신호를 설치했다. 사각지대 충돌 등 위험한 상황이 일어날 것으로 판단되면 신호가 깜빡이면서 도로 위 모든 주체가 주변 상황에 주의를 기울이게 만들어 주는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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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등에 장착된 카메라와 레이더. 이를 통해 교차로 인근을 사각지대 없이 감지할 수 있다. 에센바흐=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
바이에른주가 자전거 안전에 집중하는 이유는 높은 사고 비중 때문이다. 지난해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495명 가운데 자전거 운전자가 94명(19.0%)이었다. 2023년엔 전체 사망자 499명 중 자전거 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85명(17.0%)이었다. 시범 지역은 낮 시간대 자전거 통행량이 최대 294대에 달해 신기술의 효과를 입증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 “교차로 자체가 하나의 AI 컴퓨터”
스마트 교차로에는 보행자가 미처 건널목을 다 건너지 못했을 때 초록불을 7∼15초 자동으로 연장해 주는 기능도 구현돼 있었다. 자전거 이용자에겐 교차로를 안정적으로 건너기 위한 적절한 속도를 안내해 준다. 통행자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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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국내에서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AI가 탑재된 카메라나 레이더를 활용한 교통신호 운영 방식 도입을 준비 중이다. 에센바흐 사례와 유사하게 교통신호가 사전에 입력된 값에 따라 고정적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교통 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조정해 차량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 목표다. 경찰 관계자는 “새로운 신호 운영 방식이 도입된다면 향후 자율주행 차량 시대가 왔을 때 효율적으로 교통신호를 운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또 건널목 초록불 자동 연장 시스템의 경우는 올해 9월 기준 국내 전체 횡단보도 6만 개 중 288개에 설치돼 운영되고 있다. 보행신호가 종료되는 시점에 횡단보도상에 보행자가 있다면 최대 10초간 보행 신호를 늘려서 노약자 등 보행이 어려운 이들의 안전사고를 방지하는 것이다. 다만 보행 신호를 늘리면서 상대적으로 차량의 흐름이 불편하게 될 것을 고려해 교차로에 있는 건널목에는 적용하지 않았다.
좁히고 굽히고 돌 깔고… 표지판 없어도 서행 유도
직선 대신 S자 곡선-어긋난 교차로
‘의도적 불편함’으로 과속 차단
‘의도적 불편함’으로 과속 차단
독일의 스마트 교차로가 인공지능(AI)을 접목한 첨단기술을 통해 교통사고를 예방하는 첨단을 달린다면, 도로 설계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사고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데 집중한다. 특히 주택가 등 주거 시설이 밀집한 지역의 폭이 좁은 생활도로(이면도로)에는 차량 속도를 줄이고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가 마련돼 있다.
바이에른주 뮌헨의 생활도로는 한국과 비교해 폭이 좁을 뿐 아니라 직선 대신 완만한 ‘S자’ 구간이 곳곳에 형성돼 있었다. 특히 생활도로끼리 만나는 교차 지점도 정십자가 형태가 아니고 약간씩 어긋나게 배치했다. 무심코 직진하면 보행로에 설치된 볼라드와 충돌하는 구조다. 이런 교차로에는 성인 한 명만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간격으로 5, 6개의 볼라드가 촘촘하게 박혀 있었다. 또 생활도로와 일반 차로를 잇는 출입구는 3차로인 경우에도 생활도로는 2차로로 좁혀 차량 운전자가 진입할 때 속도를 줄여야 하는 형태였다.
보행자와 차량이 함께 이용하는 생활도로 중 커브구간과 같이 사고 가능성이 큰 곳은 큰 돌로 도로를 포장했다. 운전자가 노면의 질감을 통해 주의 구간에 진입했음을 직관적으로 감지하게 한 것이다. 도로포장을 달리하는 방식은 비단 생활도로뿐만이 아니고 차량과 트램, 보행자와 자전거 등이 복잡하게 통행하는 구간에도 적용됐다. 일반도로도 건널목이나 교통섬 앞에선 차로를 줄여 서행하도록 설계했다.
이 같은 도로 형태는 독일 도로교통법 제45조에 근거한 정책이다. 독일의 도로교통법과 도로 설계 표준은 주거 지역을 ‘시속 30km 제한 구역’으로 묶는 동시에, 운전자가 표지판을 보지 않더라도 구조적으로 속도를 낼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하도록 하고 있다. 즉, 설명이 필요 없이 바로 알 수 있는 도로를 만든 것이다.
독일에서 18년 동안 거주하고 있는 한 교민은 한국과 독일의 도로 차이에 대해 “독일은 환경이나 소음 등의 이유로 도심의 어지간한 도로를 30km 속도로 제한하고 있다”면서 “속도를 제한하는 것뿐 아니라 운전을 불편하게 만드는 장치들로 운전 집중력을 높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공동 기획: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경찰청 소방청 서울시 한국교통안전공단 손해보험협회 한국도로공사 한국도로교통공단 한국교통연구원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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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에센바흐=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