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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턱밑 중남미 대륙 확실하게 장악하려는 트럼프

입력 | 2025-12-20 09:58:00

‘트럼프 코롤러리’ 첫 타깃은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




미국 해군 제럴드 포드 항공모함이 카리브해를 항해하고 있다. 미국 해군 제공

미국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월 20일(이하 현지 시간) 재집권하고 11개월 만인 12월 5일 A4 용지 33쪽 분량의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를 발표했다. NSS 보고서는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인 1980년대 후반부터 4년마다 국가안보 목표와 우선순위를 명시한 문서다. 미국 국가안보의 최상위 전략 문서인 이 보고서는 외교와 군사를 비롯해 경제 등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지침서다. 

“서반구에서 먼로 독트린 재확인”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발표한 이번 NSS 보고서의 가장 큰 특징은 미국의 서반구 패권 장악을 위한 ‘먼로 독트린에 따른 트럼프 코롤러리(Trump Corollary)’를 제시한 것이다. 먼로 독트린은 5대 미국 대통령인 제임스 먼로(1817~1825년 재임)가 1823년 12월 2일 연두교서에서 밝힌 ‘유럽 대륙에 대한 미국의 불간섭’과 ‘미주 대륙에 대한 유럽의 불간섭’ 등 두 가지 원칙을 담고 있다. 다시 말해 미국은 유럽 대륙의 일에 관여하지 않을 테니 유럽 국가들도 아메리카 대륙에는 개입하지 말라는 뜻이다.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미국 패권을 강조한 것이다. 

‘코롤러리’는 원래 수학 용어로 ‘~계(係)’ 또는 ‘추론’을 가리키며, ‘필연적 결과’ 혹은 ‘당연한 귀결’이라는 뜻이다. 기존 원칙을 재확인하되 그 연장선상에서 새로운 내용을 추가한 일종의 업데이트를 의미한다. 트럼프 정부는 이번 NSS 보고서에서 서반구(아메리카 전체) 패권 확보를 위한 ‘트럼프 코롤러리’를 강조하고 나섰다. 보고서 15~19쪽 ‘서반구: 먼로 독트린을 잇는 트럼프 코롤러리’ 항목을 보면 “서반구에서 먼로 독트린을 재확인하고 강화해 미국 우위를 회복하고 미국 본토와 역내 지리적 요충지에 대한 접근권을 확충할 것”이라고 적시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월 2일 백악관에서 발표한 먼로 독트린 202주년을 기념하는 포고문에서 “먼로 독트린은 수세기 동안 공산주의, 파시즘, 외국의 침략 등으로부터 미주 대륙을 지켜왔다”며 “나는 47대 미국 대통령으로서 이 오래된 정책을 자랑스럽게 재확인한다”고 밝혔다. 이어서 그는 “미국은 파나마 운하의 특권을 회복했으며, 멕시코를 통과하는 마약 유통을 차단하고 서반구 전역의 마약 테러조직을 해체하고 있다”면서 “내 결정에 힘입어 먼로 독트린이 다시 살아나고 미국 리더십은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부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와 같은 일련의 정책을 묶어 ‘먼로 독트린을 잇는 트럼프 코롤러리’라고 규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먼로 독트린을 확대한 정책을 이렇게 부른 것은 1904년 미국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1901∼1909년 재임)의 선례를 따랐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도 “중남미 국가들이 정치적·경제적으로 불안정할 경우 미국이 간섭할 권리가 있다”며 ‘루스벨트 코롤러리’를 선언한 바 있다. 루스벨트 전 대통령은 이를 근거로 도미니카, 쿠바, 니카라과, 아이티 등에 군사적으로 개입했다. 

트럼프 “마두로 정권, 테러조직 지정”

미국 마약단속국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에게 5000만 달러(약 740억 원) 현상금을 건 포스터. 미국 마약단속국 제공

이런 과거 사례를 볼 때 트럼프 대통령은 ‘트럼프 코롤러리’를 앞세워 베네수엘라 마약 카르텔 척결과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교체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마두로 정권교체가 ‘트럼프 코롤러리’의 첫 시험대가 될 것이 분명하다. 미군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최근 베네수엘라 인근 카리브해에 세계 최대 핵추진 항공모함인 제럴드 포드호 전단을 배치하며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이미 1만5000여 명 미군 병력과 12척의 군함, 각종 항공기가 카리브해·동태평양 등에 포진하고 있다. 

게다가 미군은 카리브해·동태평양 일대에서 마약 밀매 의심 선박을 대상으로 ‘서던 스피어(Southern Spear)’라는 군사작전도 진행해왔다. 미군은 9월부터 최근까지 마약 운반선으로 의심되는 선박을 최소 22차례 격침했고, 이 과정에서 최소 87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해상을 통해 미국으로 유입되는 마약의 96%를 차단했다”면서 “우리는 마약 밀매 조직의 거점과 이동 경로, 제조 장소를 모두 알고 있으며, 곧 지상 공격을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군은 지상 작전에 대비해 미국령 푸에르토리코를 비롯해 도미니카, 트리니다드토바고 등 인근 국가에 F-35A 전투기, 전자전용 EA-18G 그라울러, 공중급유기, 구조용 헬리콥터 등을 배치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12월 16일 마두로 정권을 ‘해외 테러조직’으로 지정했다. 그러면서 베네수엘라를 오가는 모든 제재 대상인 원유 운반선에 대한 ‘전면적이고 완전한 봉쇄’를 명령했다. 마두로 정권의 돈줄을 끊기 위한 조치에 나선 것이다. 앞서 미국 정부는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수송하는 대형 유조선을 나포한 바 있다. 팸 본디 법무장관은 12월 10일 연방수사국(FBI)과 국토안보수사국(HSI), 해안경비대, 특수부대 요원들이 카리브해 공해상에서 유조선 나포 영장을 집행했다고 밝혔다. 본디 장관은 “이 유조선은 수년간 외국 테러조직을 지원하는 불법 석유 운송 네트워크에 관여한 혐의로 미국의 제재를 받아왔다”고 밝혔다. 해당 유조선은 베네수엘라 국영석유기업 PDVSA의 원유를 운반하고 있었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도 이 유조선이 미국의 제재 대상인 이란 혁명수비대(IRGC)와 불법 원유 거래를 했다고 밝혔다. 이 유조선은 초대형 원유 운반선으로, 11월 중순 선박자동식별시스템(AIS)을 끈 채 베네수엘라에서 110만 배럴의 중질유를 몰래 선적했다. 미국 정부는 이번 조치가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실으려고 대기 중인 ‘그림자 선단(shadow fleet)’ 유조선들에 대한 경고라고 주장했다. 베네수엘라 연안에는 유조선 12척이 대기하고 있다.

세계 최대 원유 매장량을 자랑하는 베네수엘라는 올해 하루 평균 75만 배럴의 원유를 수출했고, 이 중 70% 이상이 중국으로 향했다. 최근 수개월 동안 베네수엘라의 원유 수출량은 조금씩 증가했다. 미국의 압박 작전에도 11월 수출량은 하루 

92만 배럴로 증가했다. 베네수엘라 전체 수출에서 원유 비중은 최대 72.4%에 달한다. 베네수엘라 정부 전체 예산의 58%에 이르는 규모다. 베네수엘라는 그동안 미국 등 국제사회 제재로 수출이 어려워지자 국제유가의 80%로 할인된 가격에 원유를 중국 기업 등에 판매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 정부가 중국행 유조선을 집중적으로 나포한다면 마두로 정권에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안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베네수엘라 원유 차지 속셈도
미국 정부의 유조선 나포는 베네수엘라산 에너지에 대한 지배권을 차지하려는 속셈이라고 볼 수도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국(EIA)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의 확인된 원유 매장량은 3030억 배럴에 달한다. 전 세계 매장량의 5분의 1 수준이다. 사우디아라비아(2670억 배럴), 이란(2090억 배럴), 캐나다(1630억 배럴), 이라크(1450억 배럴) 등 다른 산유국보다 많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마두로 정권이 축출되면 미국 기업들이 베네수엘라에 적극 진출해 원유 개발과 생산 등 지배권을 강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베네수엘라산 원유는 정제가 어렵고 손이 많이 가는 중질유지만, 디젤 또는 아스팔트와 중장비용 연료 등을 생산하는 데 활용도가 높다. 반면 미국산 원유는 주로 저유황 경질유라서 휘발유 이외 용도로는 한계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마두로 정권을 교체하려는 또 다른 의도는 중국과 러시아의 서반구 진출을 견제하려는 속셈이다. 베네수엘라는 반미 좌파 독재국가일 뿐 아니라, 중국·러시아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미국이 서반구 패권을 장악하려면 무엇보다 중국과 러시아의 진출을 억제하고 중남미 국가 집권 세력을 반미 좌파에서 친미 우파로 바꿔야 한다. 베네수엘라가 ‘트럼프 코롤러리’의 모델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러시아와 친밀한 관계인 반미 좌파가 정권을 잡은 콜롬비아에 마약 밀매 퇴치 예산 지원을 중단하고 구스타보 페트로 대통령을 ‘마약 밀매의 수장’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멕시코가 펜타닐과 불법 이민자의 미국 유입을 막지 않는다”는 이유로 멕시코에 30% 관세를 부과하는 등 좌파 출신인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대통령도 압박하고 있다. 브라질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타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남미 좌파의 대부’라는 말을 들어온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과는 상극이다. 그는 브라질에 기본 관세 10%에 추가 관세 40%를 추가해 50% 관세를 부과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과 정치적 동지이자 우파인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브라질 대통령이 쿠데타 모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것이 정치적 탄압이라고 주장해왔다. 

미국 정부는 앞으로 서반구 패권을 장악하고자 중남미 국가들을 상대로 ‘트럼프 코롤러리’ 정책을 더욱 강력하게 추진할 것이 분명하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518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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