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하·끝〉 국가-지자체가 ‘방어선’ 돼야 과거 ‘치매머니 사냥’ 골치였지만, 돈-돌봄 분리시켜 피해 줄여 전문 후견인-신탁에 재산 맡기고… 저소득층 후견 관리 국가가 지원 은행선 치매 고객 고액거래 신고
지난달 6일 일본 사이타마현 한노시의 솜포요양원에서 미와 요시오 씨가 자신의 임의후견계약 내용이 담긴 서류를 들고 미소 짓고 있다. 4년 전 임의후견 계약을 체결한 미와 씨는 최근 인지능력이 떨어짐에 따라 이날 본인 동의를 거쳐 본격적인 후견 개시 절차에 들어갔다.
“저한테…. 재산이 있나요?”
미와 씨(오른쪽)가 요양원 접견실 책상 앞에 앉아 자신의 후견인인 다카하시 히로시 법무사로부터 임의후견 계약 내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다카하시 씨는 미와 씨가 직접 서명했던 계약서를 꺼내 차분히 읽어 내려갔다. “혹시 내가 치매에 걸려도 살던 곳을 떠나지 않겠다. 내 재산은 요양비로 우선 쓰고, 남은 돈은 지역 발전을 위해 쓰고 싶다.” 서류에서 눈을 뗀 다카하시 씨가 미와 씨와 눈을 맞췄다. “이 약속대로 저희가 재산을 안전하게 지키겠습니다.” 미와 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안심 되네요.”
2년 전 치매 진단을 받고 인지능력이 떨어지고 있는 미와 씨는 이날 4년 전의 임의후견 계약 내용을 거의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임의후견인이 당시 계약 내용을 차분히 읊어주자 “안심이 된다”며 눈물을 훔쳤다.
지난달 6일 일본 사이타마현 한노시의 성년후견지원센터. 한노시에서 양성한 시민후견인인 사노 시게루 씨(오른쪽)가 센터 직원과 후견 업무를 상담하고 있다. 은퇴 간호사인 그는 3년째 80대 치매 환자의 시민후견인으로 일하고 있다.
사무실에선 사노 시게루 씨(68)가 센터 직원과 상담 중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양성한 ‘시민후견인’이다. 은퇴 후 간호사 경험을 살려 이웃 치매 노인의 후견인으로 활동하는 그는, 이날도 자신이 맡은 80대 치매 노인의 병원비 납부 문제를 상의하러 들렀다.
지난달 6일 일본 사이타마현 한노시 사회복지협의회 1층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간판에는 “‘한노시 사회복지협의회 창구’, 부담없이 들어오십시오”라고 적혀있다. 이곳 성년후견지원센터에서는 시민후견인 양성 및 교육, 후견 업무 상담 등이 이뤄진다.
후견인이 지정되기 전에도 보호망은 작동한다. 한노시는 판단력이 떨어지기 시작했으나 아직 법정 후견이 필요할 정도는 아닌 노인을 위해 ‘안심 서포트’ 제도를 운용 중이다. 누가 빼돌리지 못하게 연금이나 수당을 직접 노인에게 전달한다. 저소득층의 경우 후견인의 활동을 관리하는 감독인 비용도 국가가 대신 내준다. 일본도 아직은 사후 조치인 법정후견을 이용하는 노인이 많지만, 임의후견 활성화를 위해 법 개정도 추진 중이다.
지난달 7일 도쿄 신주쿠구의 일본사법서사회연합회 ‘리걸서포트’ 관계자들이 일본의 성년후견제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일본은 2016년경 친족 후견인에 의한 부정행위가 사회 문제가 되며 전문가 후견인 양성에 공을 들였다.
이에 일본 법원은 칼을 빼 들었다. ‘돈’과 ‘돌봄’을 분리하는 대수술을 감행한 것이다. 이에 따라 변호사·법무사 등 전문가가 후견인을 맡는 비율은 과거 10%에서 현재 80% 수준으로 상승했다.
지난달 4일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난 아카누마 야스히로 성년후견전문변호사가 일본의 ‘후견제도지원신탁’ 제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제도 도입으로 일본에서는 후견인에 의한 부정행위 피해가 크게 줄었다.
최근에는 재산 관리는 전문 후견인이나 신탁은행이, 병원 동행이나 요양원 선택은 가족이 맡는 ‘역할 분담’이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신탁금을 운용하다가 생긴 손실은 전액 금융사가 책임지도록 했다. 치매에 걸리기 전 믿을 수 있는 가족에게 자산 관리를 위탁하는 ‘가족신탁’도 활성화돼 있다. 다만, 일본은 연금 운용기관 등이 재산을 맡아주는 공공신탁은 운영하고 있지 않다.
금융 시스템 역시 촘촘하다. 일본 금융기관은 지자체와 협력해 치매 의심 고객의 거래 패턴을 모니터링한다. 평소와 달리 고액을 찾거나 낯선 인물이 동행해 돈을 찾으려 하면 즉시 지자체에 신고한다. 공무원은 즉각 개입해 사실관계를 확인한다.
지난달 4일 도쿄 주오대에서 만난 아라이 마코토 교수는 “사회 전체가 후견을 책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라이 교수 본인도 5년 전 자기 딸을 후견인으로 하는 임의후견 계약을 맺었다.
<히어로콘텐츠팀>
▽팀장: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
▽취재: 전혜진 박경민 최효정 기자
▽프로젝트 기획: 김재희 기자
▽사진: 박형기 기자
▽편집: 하승희 봉주연 기자
▽그래픽: 박초희 기자
▽인터랙티브 개발: 임희래 ND
▽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임선영 인턴
QR코드를 스캔하면 치매 노인의 자산을 노리는 ‘사냥’의 실태를 디지털로 구현한 ‘헌트: 치매머니 사냥’(https://original.donga.com/2025/HUNT)으로 연결됩니다.
도쿄=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
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