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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중고시장이라는 새로운 유니버스에서 가격이 매겨지는 물건에 자신을 투사하고 시장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평가하는 강박을 갖고 있음을 털어놓습니다. 중고로 나온 물건들을 안쓰럽게 여기기도 하고 나는 세상에 또는 누군가에게 유용한가 질문합니다. 작가는 나름 인기 프리랜서로 끊임없이 시장의 평가를 받는 입장이니까, 당근마켓에 나온 유행 지난 가방에 공감하고 그들의 성실함을 치하할 수도 있는 능력이 있군, 역시 예술가는 다르네,하고 책을 덮었습니다. 그런데 중고거래를 하고, 그것을 글로 정리할 때마다 그의 우울한 폴로네이즈가 귓가에 맴돌곤 했습니다. 내가 하려던 얘기가 결국 그것이었나. 저는 예술가도, 프리랜서도 아니고 그저 퇴근 후 집에서 중고거래하는 재미를 찾은 직장인일 뿐인데 말이죠.
중고거래는 별일 없이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을 궁리한 결과였어요.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별일 없어, 잘 지내”라고 안부를 말할 수 있도록 내 일과와 시간을 단순하게 하고 싶었어요. 잃어버리거나 잊을 것들은 미리 없애고, 자유로운 공간과 시간적 여유를 얻고 싶었답니다. 그리고 첫번째 중고 거래를 하자마자 이것이 단순히 ‘물건 비우기’가 아니라 어떤 전환점, 좀 과장하면 특이점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죠. 도로의 유턴처럼 왔던 길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새로운 길로의 진입이 가능한 출구가 될 것이라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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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거래의 경험은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내가 경청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자기소개서에도, SNS에도 쓰지 않았던 솔직함으로 물건을 구입할 때의 경제적 심리적 상황, 내가 사랑한 색과 패턴과 질감, 그것이 절실했던 이유와 그 사이의 변화, 그것으로 인해 반짝거린 기억, 심지어 나와 가족에게 미친 영향을 기록합니다.
이렇게 나의 물건을 떠나보냅니다. 물건에 쌓인 추억을 거둬들이고, 물건으로 이어졌던 사람들과 헤어집니다.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루이즈 부르주아가 조소했던 세계와 이별을 고합니다. 대신 자유로운 공간을 얻고 길고양이를 힘써 돌보고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을 이웃으로 만납니다. 이곳에서 잠시 쉬어도 좋겠습니다. 유턴을 하려면 언제나 결단과 열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깨닫습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길로 들어선 내가, 이제야 마음에 듭니다.― 끝
@madame_carrot 당근, 고양이, 글쓰기를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