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실천상·GKL사회공헌상’ 인터뷰 ② 사랑나눔상 문화장터 ‘뚝방마켓’ 임원자 씨
전모를 쓰고 한복을 입은 고성 뚝방마켓 임원자 대표. 그는 뚝방마켓을 찾는 이들에게 ‘환대의 상징’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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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역 앞 오래된 뚝방로. 한때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고 바람만 스쳐 지나가던 공간이었다. 이제 토요일이 되면 풍경이 완전히 달라진다. 곡성천이 그림처럼 흐르고, 뚝방길을 따라 노란 천막이 길게 늘어서고, 그 아래로 손수 만든 수공예품과 제철 먹거리가 펼쳐진다.
그 사이를 전모(조선시대 기생용 삿갓)를 쓰고, 은박이 수놓인 핑크색 조끼에 검정 치마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한 사람이 분주히 오간다.
협동조합 ‘뚝방’의 임원자 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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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작은 장터에서 시작된 그의 발걸음은, 지금 곡성의 가장 따뜻한 문화 현장으로 자라났다. 그 사이 뚝방마켓은 492번의 토요일을 채웠다.
● “이 지역 아이들은, 문화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자랐어요”
임 대표는 곡성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곡성은 인구 소멸 지역이에요. 복지 대부분이 노인과 다문화 가정에 집중되고, 아이들이 문화·예술을 접할 기회는 거의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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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 주체는 주민 협동조합, 공간은 군 소유, 취지는 분명했다. ‘창업 인큐베이팅, 판매 기회 제공, 그리고 주민과 관광객이 함께 어울리는 문화적 장.’
그는 2016년부터 7년 동안 무급 대표로 마켓을 책임졌다. 2023년에야 월 50만 원 남짓의 활동비를 받기 시작했다. 그는 “일을 벌이는 이유가 돈이면 이 마켓은 오래 못 버텼을 것”이라고 말했다.
곡성역 앞 뚝방로에서 매주 토요일 열리는 뚝방마켓. 임원자 대표가 10년간 지켜온 이 공간은 노란 천막 아래에서 장터이자 문화 현장으로 자리 잡았다.
처음 이곳은 아무것도 없는 빈 땅이었다. 비만 오면 길이 질퍽해지는 공간. 임 대표는 직접 나무를 심고, 돌을 옮기고, 포토존의 색을 칠했다. 마켓의 시그니처 컬러인 노란색도 그가 골랐다. 곡성역과 기차마을을 잇는 이 뚝방길이 “그냥 지나치는 길”이 아니라 “머무는 길”이 되길 바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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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방마켓을 기획할 때, 임 대표가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아이들이었다.
“곡성에는 아이들이 다양한 문화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이걸 만들었을 때, 우리 읍내 아이들이 보호자 없이 자유롭게 혼자 와서 누릴 수 있는 공간이 됐다는 것, 그게 가장 보람됐어요.”
뚝방에서 자란 아이들의 얼굴은 그의 기억 속에 선명하다.
“셀러들의 자녀들이 같이 해가 가면서 같이 성장하는 거죠. 우리 집 막내도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매주 엄마를 따라왔는데 지금은 고등학생이 돼서 자원봉사도 하고 여기서 아르바이트도 해요. 유모차 타고 왔던 쌍둥이들이 지금은 걸어서 다니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지치지 않고, 재미있게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 “판매보다 중요한 건, 한 사람의 삶이 다시 움직이는 순간”
뚝방마켓의 진짜 의미는 ‘판매’에 있지 않다. 수익 구조만 봐도 그렇다. 주요 재원은 셀러 참가비이고, 셀러 매출에 대한 수수료는 받지 않는다. 운영 인건비 일부는 군에서 직원 급여 보조 형태로 지원받는다. 잉여가 발생하면 군과 공동 분배하도록 되어 있지만 “늘 수익은 없었다”는 게 운영 측 설명이다.
임 대표는 협동조합에서 급여를 받은 적이 없고, 생계는 미술학원 운영, 개인 셀러 활동, 지역 활동가로서의 일에서 나온다. 그가 뚝방마켓을 통해 얻는 건 돈이 아니다. 경력 단절 엄마, 이주 여성, 농민, 작은 읍의 공예 작가들. 그는 이들을 하나씩 설득해 장터로 이끌었다.
“작품이 너무 예쁜데, 왜 혼자만 갖고 계세요?”
“한 번만 나와보면, 진짜 달라질 수 있어요.”
뚝방마켓은 자연스럽게 창업 인큐베이팅 공간으로 변했다. 처음엔 떨면서 첫 손님을 맞던 사람들이, 몇 번의 토요일이 지나면 “이제는 내 이름으로 작품을 판다”고 말하게 된다.
“이 마켓으로 돈을 버는 건 제 일이 아니에요. 사람들이 자기 이름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그 순간을 지켜보는 것. 그게 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 “이 작은 읍에, 첫 무대를 가진 아이들이 생겼어요”
뚝방마켓의 토요일은 작은 공연으로 시작되는 날이 많다. 아동·청소년 동아리, 면 단위 난타팀, 지역 댄스팀, 다문화가족센터 아이들이 무대에 선다.
“이게 제 첫 무대예요.” 아이들이 이렇게 말할 때, 임 대표는 이 공간이 단순한 시장이 아니라는 걸 다시 느낀다.
셀러들은 원데이 클래스·공예 체험을 재능기부 형태로 열고, 교육청 보조사업과 연계해 ‘마을 어린이 대상 무료 공예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다문화 여성들은 이곳에서 직접 음식을 조리·판매하며 지역 사회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 마켓은 그분들에게 ‘나는 이 마을의 사람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장이에요.”
뚝방마켓을 찾은 방문객들 가운데는 “그냥 시골 장터려니 했다가 문화 충격을 받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어떤 이들은 “한복에 전모 쓰고 돌아다니는 대표님 캐릭터가 너무 재밌다”는 반응도 있었다. 임 대표는 이 말을 “최고의 칭찬”으로 받아들인다.
“사실 제가 이렇게 한복을 입고, 전모를 교복처럼 쓰고 있는 건 저 하나의 캐릭터가 뚝방마켓을 방문하는 분들에게 ‘환대’의 의미가 되길 바랐기 때문이에요. 제가 이렇게 돌아다니고 있으면 요만한 꼬맹이들이 제 치맛자락을 잡고 ‘이모 예뻐요’라고 하거든요. 정말 기쁘죠.”
● 10년, 492번의 토요일…곡성을 넘어, 다른 지역으로 번지는 ‘모델’
곡성 뚝방마켓에서 주민과 방문객들이 체험 프로그램과 장터를 즐기고 있다.
“마켓을 찾는 사람이 계속 생기고, 그 사람들이 조금씩 행복해지는 걸 보는데… 이걸 왜 멈추나요?”
뚝방마켓은 이제 곡성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임 대표는 장수, 무안 등 다른 지자체에서 사례 공유·강연 요청을 여러 차례 받았다. 곡성의 작은 실험이 ‘지역이 스스로 문화를 만들어가는 구조’의 선례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2023년에는 행정안전부-신한은행 협력 공모사업에 선정돼 3000만 원 안팎의 사업비를 확보했고, 이를 캐릭터·굿즈 개발 등 ‘브랜딩 고도화’에 사용했다. 기차마을과의 연계, 곡성몰 입점 시도 등 ‘곡성 로컬 브랜드’로의 도약도 함께 모색 중이다.
고성 뚝방마켓 임원자 대표가 12일 서울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열린 ‘이웃사랑실천상·GKL사회공헌상’ 시상식에서 사랑나눔상을 수상했다. 왼쪽부터 GKL사회공헌재단 이재경 이사장, 임 대표.
10년 가까운 시간 응원만 받은 것은 아니었다. 갈등도, 오해도 있었다. “어떻게 지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임 대표는 잠시 웃다가 이렇게 말한다.
“오는 내내 행복했고, 재밌었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돈에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다른 활동가 분들께 꼭 드리고 싶은 말은 이거예요. 지치지 않고 꾸준히 가시려면, 그냥 스스로 행복을 찾아서 활동하셔야 한다는 거예요.”
뚝방마켓은 곡성의 상권을 조금씩 살려왔고, 지역 주민에게 새로운 소득원을 만들어줬고, 외지 셀러와 관광객이 곡성을 다시 찾게 만드는 ‘관계 인구’를 늘려왔다. 임원자 대표의 이름 앞에는 이제 ‘이웃사랑실천상·GKL사회공헌상’ 사랑나눔상이라는 타이틀이 하나 더 붙었다.
최현정 기자 phoeb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