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에게서 ‘FIFA 평화상’을 받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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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건 상명대 스포츠ICT융합학과 교수
이 논란의 핵심은 특정 개인에 대한 호불호가 아니다. ‘평화’라는 단어가 이토록 가볍고 불투명하게 유통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월드컵이라는 전 지구적 스포츠 자산이 개인 간 거래로 소비됐다는 점에서 심각한 일탈이다.
무엇보다 이번 수상은 스포츠에 대한 모욕에 가깝다. 그동안 트럼프가 스포츠를 어떻게 인식해 왔는지를 떠올리면 그렇다. 그는 선수의 사회적 발언을 폄하하고,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선수들을 조롱해 왔다. 스포츠라는 무대를 건강한 삶과 여가의 영역에서 분리해 권력 과시의 장으로 활용했다. 스포츠가 추구하는 공정과 정의, 팀을 위한 희생이란 가치를 존중하는 태도는 그의 언어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정치인이 최초의 FIFA 평화상 수상자라니. FIFA는 ‘레드카드’를 받아야 한다. 판정 번복이 불가능한 퇴장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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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조직이 정치 권력과 결합하는 순간, 공공성이 급격히 약화된다. 이는 스포츠 거버넌스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경고다. 이 과정에서 ‘평화’ ‘인류’ ‘보편적 가치’와 같은 단어가 가장 먼저 오염된다. 파급력은 크지만 검증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이번 FIFA 평화상은 세계의 축구를 담당하는 조직이 권력과 자본을 향해 구애하는 이해집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고백한 것이다. 그저 트럼프가 상을 받을 만한가를 따지는 도덕성 문제가 아니라 스포츠 거버넌스가 어떻게 붕괴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정치 권력이 스포츠를 도구로 볼 때는 위험하다. 그런데 스포츠가 권력에 손을 내밀 때는 더욱 위험하다. 그래서 인판티노 회장의 FIFA 평화상 기획과 트럼프의 제1회 수상은 세계 축구 거버넌스의 붕괴 조짐으로 보인다. 매우 유감(遺憾)스럽다.
유상건 상명대 스포츠ICT융합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