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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론/이재묵]서른 살 지방선거, 언제까지 중앙정치 대리전 만들 건가

입력 | 2025-12-04 23:15:00

지방선거 애초 취지는 ‘지역 미래는 지역이’
극심한 진영 갈등에 중앙정치 예속 우려 커
與 ‘내란 종식’ 野 ‘독재 견제’로 치르려 해
남은 6개월, 국민이 성과-해법 따질 수밖에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1991년 지방자치의 부활과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실시는 중앙집권적 구조를 분권 체제로 전환하는 한국 정치·행정 시스템의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이를 통해 주민들은 생활정치에 더 쉽게 참여할 수 있게 됐고, 지방정부는 지역 특성에 맞춘 정책 실험과 자율적 행정 운영의 기반을 확보했다. 이처럼 지방자치제 시행은 한국 민주주의의 지평을 넓히고 정치구조를 보다 다층적으로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우리 지방자치는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무엇보다 지방선거가 중앙정치에 과도하게 종속되는 구조가 반복되면서 지방정치의 고유한 기능이 점차 퇴색되고 있다. 지방정부의 성과와 책임이 중앙정부 평가와 쉽게 뒤섞이는 구조적 특성 때문에 책임 귀속이 모호해지고, 그 결과 지방선거는 정권의 중간평가로 흐르기 쉽다. 유권자들이 지방정치 관련 정보를 충분히 얻기 어려운 현실도 이러한 경향을 강화한다. 정보가 부족하니 유권자는 대통령의 국정 운영이나 정당 구도 같은 중앙정치의 신호에 기대어 투표하게 되고, 중앙 언론도 지방 의제보다 중앙정치 이슈를 집중 조명하면서 지방선거의 의미는 더욱 축소된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 위에 최근의 극심한 진영 갈등과 정치 양극화가 겹치면서, 6개월 앞으로 다가온 내년 6·3 지방선거의 중앙정치 예속화 문제는 한층 심화될 전망이다. 12·3 계엄 사태 이후 정치권은 강대강 대립 구도로 빠르게 수렴했고, 내년 지방선거 역시 여당의 ‘내란·계엄 종식’ 프레임과 야당의 ‘독재 저지’ 구호가 선거 캠페인을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집권 여당은 2차 종합특검과 내란특별재판부 도입 등을 통해 이른바 ‘내란 정국’을 지방선거까지 이어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계엄 1주년 특별성명에서 강조한 ‘정의로운 통합’도 책임 규명과 엄정한 처벌에 우선순위를 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국민의힘 역시 지방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이 같은 중앙정치 프레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장동혁 대표는 계엄 1주년 메시지를 통해 계엄 사태를 ‘의회 폭거’에 맞선 행위로 정당화하는 데 무게를 뒀고, 강경 보수 지지층을 겨냥해 이재명 정권에 대한 ‘레드 카드’를 내년 선거의 의미로 제시했다. 이번에 계엄에 대해 확실히 단절하지 못하면서 결국 여당의 ‘내란·계엄 종식’ 프레임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이처럼 중앙정치의 충돌이 거세질수록 지방 의제는 후순위로 밀리고, 지방선거는 지역의 미래를 선택하는 장이 아니라 중앙정치의 연장전으로 흘러갈 위험이 커진다. 이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지방선거 본래의 목표를 흔들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더욱이 내년 지방선거는 지방자치 30주년을 맞은 뒤 치르는 첫 선거로, 그동안의 성과와 한계를 유권자가 직접 평가하고 향후 자치 민주주의의 방향을 결정할 중요한 분수령이 돼야 한다.

현재와 같은 양극화 국면에서 지방선거의 의미를 살리려면 우선 정당이 지방선거를 대하는 방식부터 달라져야 한다. 무엇보다 중앙정치 프레임을 기초 단위까지 확장해 전국적 세몰이를 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지역별로 서로 다른 정책 수요와 정치적 맥락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내란·계엄’ 프레임과 ‘정권 심판’ 프레임이 선거 전반을 뒤덮는 상황에서 이를 지방선거의 기본 전선으로 고착시킨다면 지방정치 고유의 경쟁 기반은 회복되기 어렵다.

따라서 정당은 지역 공약 개발 과정에서 중앙당 중심 방식을 벗어나 지역 당원과 주민 의견을 실질적으로 반영하고, 지방정부의 역량과 책임성을 높일 수 있는 후보를 공천하는 절차를 갖춰야 한다. 이는 비단 지역 맞춤형 공약 제시를 넘어, 지방선거가 중앙정치의 소음을 걸러내고 지역 의제를 복원하는 제도로 다시 작동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정당이 지방선거를 중앙정치의 대리전으로 만들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면, 그 빈틈을 메우는 것은 결국 유권자의 몫이다. 유권자는 후보가 지난 4년 동안 지역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지역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현실적 해법을 제시하는지에 더 집중해야 한다. 지방선거는 주민의 삶을 가장 직접적으로 바꾸는 민주주의의 현장이다. 지방자치 부활 30주년을 맞는 내년 지방선거는 우리가 왜 지방자치를 부활시켰는지 그 근본적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돼야 한다. 30년 전 “지역의 미래는 지역이 결정해야 한다”라며 지방자치 부활을 이끌었던 문제의식을 다시 회복할 때, 우리 지방정치는 비로소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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