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계엄군 장교 “국회 진입 명령 안따르려 생수 사는 등 시간 끌어”

입력 | 2025-12-03 03:00:00

[계엄 1년, 끝나지 않은 그림자]
여의도 출동했던 군경의 소회
경찰 간부 “상황 모른 채 국회 봉쇄
그때 판단 하나하나 후회로 남아”



지난해 12월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 앞 계엄군 차량 뒤로 군 헬기가 경내로 비행하고 있다. 2024.12.4 뉴스1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의 밤에 ‘국회로 가서 시민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받았던 군인과 경찰은 “지난 1년을 고통과 후회 속에서 살았다”고 털어놨다. 지시에 맞선 이도, 혼란 속에 따르게 된 이도 있었지만 남은 건 비슷한 죄책감과 무기력감이었다.

계엄 해제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일선 장병들의 ‘항명’이 있었다. 진압 명령을 거부한 장교 박호준(가명) 씨는 그날 비상소집 직후 부대가 순식간에 ‘전시 체제’로 전환되는 걸 목격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가 TV로 흘러나오자 지휘부는 “합법적 명령”이라며 국회로 출동하라고 했다. 박 씨와 동료들은 떠밀리듯 부대를 나섰지만 ‘이건 옳지 않다’는 생각으로 국회 진입을 거부했다. 그는 “역사의 죄인이 될 수는 없었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명령을 내린) 사령관을 체포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실제 국군 방첩사령부 병력은 국회 주변 수백 m 밖에서 대기하며 ‘진입 불응’ 상태를 유지했다. 9월 법정에서 이들은 “국회로부터 네 블록 떨어진 곳에서 기다렸고, 편의점에서 생수를 사 마시며 시간을 끌었다”고 증언했다. 당시 방첩사 인원 중 국회나 선관위에 발을 들인 이는 한 명도 없었다.

반면 출동 지시에 그대로 휘말린 이도 있었다. 국회 봉쇄를 지휘한 경찰 간부 중 한 명이었던 김정원(가명) 씨는 그날 밤 혼란한 가운데 부하 직원들을 데리고 국회로 향했다. ‘가서 무얼 하느냐’고 묻는 부하에게 할 말이 없었다. 국회 출입문 앞에서 시민과 경찰이 충돌하자 김 씨는 ‘일단 안전사고부터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평소 집회 현장에서 질서 유지를 하듯 시민을 통제했다. 계엄이 해제된 뒤 경찰 내에는 오랫동안 무거운 공기가 감돌았다. 그는 “처음 몇 달은 서로에게 ‘미안하다’고만 했다. 그날 했던 판단 하나하나가 지금도 후회로 남는다”라고 말했다.

계엄 선포와 국회 봉쇄를 결정한 체계는 모두 ‘위’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지금 징계·심의 대상이 된 다수는 당시 현장에서 버티던 실무자들이다. 박 씨 등 그날 용기를 냈던 장병들도 국방부 징계 논의와 인사위원회를 앞두고 있다.

박 씨는 허무함과 무기력함을 토로했다. 그는 “탄핵 정국 초기 정치인들이 ‘항명한 군인은 지키겠다’고 공언했지만, 지금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며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는 걸 설명해도 ‘출동했다’는 이유 하나로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면, 어느 군인이 진심으로 나라를 지키겠느냐”라고 말했다.



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트랜드뉴스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