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인’ 파리 중심부 진출 논란 한 달 쉬인, BHV마레 백화점 입점… 파리市, 성탄 야외행사 불허 패션업계 “佛 자존심에 모욕”… 디오르, 겔랑 등 해당 백화점 철수 러 지원-무역갈등으로 反中 정서↑… 젊은층 “경제난에 저가 브랜드 선호”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프랑스 도심 ‘BHV 마레’ 백화점. 중국 저가 패스트패션 플랫폼 ‘쉬인’의 프랑스 진출 뒤 부각되고 있는 각종 논란을 의식해 파리시는 이 백화점의 크리스마스트리 등 야외 장식을 제한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화려한 장식에 나선 다른 파리 백화점들에 비해 차분한 분위기다. 파리=유근형 특파원 noel@donga.com
유근형 파리 특파원
외부 장식도 예년과 달리 차분했다. 매장 개장 당시 쉬인을 상징하는 검은색 대형 깃발과 휘장이 백화점 외벽을 장식했지만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 쉬인의 흔적은 백화점 정문에 약 20cm 크기로 적힌 ‘쉬인’ 문구뿐이었다. 쉬인 입점에 따른 프랑스 사회의 논란과 반발을 고려해 적극적인 홍보를 지양하는 듯 보였다.
● 명품 브랜드 “쉬인과 동시 입점 못 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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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인근 카페에서 일하는 마르티네 씨는 “이 백화점에 들어가는 것 자체를 부끄러워하는 시민이 많다”며 “이로 인해 카페, 음식점 등 주변 상권까지 영향을 받고 있다”고 했다.
‘BHV 마레’ 백화점 6층에 문을 연 ‘쉬인’의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오후 오프라인 매장 모습.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 기간이지만 다른 매장에 비해 손님이 눈에 띄게 적었다. 파리=유근형 특파원 noel@donga.com
이 백화점에 쉬인 매장이 들어서자 프랑스 패션업계는 ‘프랑스 패션에 대한 모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쉬인의 노동력 착취 논란과 디자인 표절 의혹 등은 유서 깊은 프랑스 패션업계로선 전통과 자존심을 훼손하는 행위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쉬인이 1856년 문을 연 169년 전통의 유서 깊은 BHV 마레 백화점에 입점한 것은 단순한 사업 확장이 아니라 프랑스 사회에 대한 도발이나 다름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일부 기업은 이 백화점에 대한 보이콧에 나섰다. 루이뷔통모에에네시(LVMH) 그룹의 향수 브랜드 ‘디오르’와 ‘겔랑’은 모두 BHV 마레 백화점에서 철수하기로 했다. 의류 그룹 SMCP 또한 ‘산드로’ ‘마쥬’ 등 자사 브랜드 매장 4개를 빼겠다고 통보했다. 파리 디즈니랜드도 이 백화점에서 크리스마스 팝업 스토어를 열 계획을 포기했다. 백화점에서 만난 중국계 프랑스인 데이시 팽 씨는 “명품 브랜드들은 쉬인과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 자신들의 브랜드 가치 또한 떨어진다고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 EU도 전방위 압박
프랑스 정부도 쉬인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다. 특히 쉬인이 무기류 등도 판매한 사실이 드러나자 ‘아동 보호’ ‘공공 안전’ 등을 이유로 전방위 규제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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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부 등 경제 부처는 쉬인을 통해 발송된 소포를 공항에서 전수 조사하기로 했다. 쉬인의 추가 위법 증거를 찾기 위한 조치다. 아멜리 드몽샬랭 공공회계부 장관은 “공항 세관원들을 총동원해 발송된 소포 100%의 적합성, 신고 내용의 진실성, 세관 및 납세 의무 이행 여부를 확인하겠다”고 강조했다.
유럽연합(EU)도 쉬인에 대한 압박에 가세했다. 최근 EU 집행위원회는 쉬인이 유럽 전역의 소비자에게 체계적인 위험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며 ‘소비자 관련 보호 방침’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또 유해 불법 상품을 막고 미성년자 보호를 위해 도입된 EU 디지털서비스법에 따라 쉬인에 대한 조사 개시를 검토하고 있다. 조사에서 문제가 드러나면 연간 전 세계 매출의 6%에 달하는 과징금 부과로 이어질 수 있다.
값싼 중국산 전자상거래 수입품을 견제하기 위해 이르면 내년부터 해외발 저가 소포에 대한 관세도 부과할 방침이다. 지난달 13일 EU는 현행 150유로(약 25만 원) 미만의 저가 소포에 대한 면세 혜택을 폐지하고, 조속한 시일 내에 관세를 매기기로 합의한 바 있다. 소액 소포에 대한 과세는 쉬인에 대한 직접 타격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고 프랑스 일간 르몽드 등이 진단했다.
최근 서유럽 전반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반(反)중국 정서가 쉬인 논란을 계기로 증폭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유럽 전역에서는 서방의 제재에도 러시아산 원유를 계속 수입하는 중국에 대한 거부감이 사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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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佛 젊은층은 가성비 소비 욕구
물론 유럽 전반의 쉬인 때리기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다. 프랑스 패션 산업계의 우월 의식과 초저가 중국 브랜드에 대한 무시 및 폄하가 뒤섞여 있다는 것이다.
일부 프랑스 젊은층은 ‘쉬인을 구매하는 게 왜 나쁜가’라는 주장도 펴고 있다. 고물가, 경기 둔화가 이어지는 상황이라 합리적인 소비를 위해 쉬인처럼 저렴한 상품을 구매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학생 엘레나 씨는 “어차피 유명 명품 브랜드들도 생산은 중국에서 하는 사례가 많다”며 “가격이 싼 상품을 팔면 소비자로선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백화점 등 유통업계 역시 젊은 고객 확보 전략에 대한 고민이 큰 상황이다.
쉬인 사태가 경제 위기에 따른 딜레마에 빠진 프랑스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평가도 있다. 최정우 파리 이스막대 교수는 “중국 기업의 노동력 착취에 반대하는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면서도 가성비 상품 또한 포기할 수 없는 일종의 이중성을 보여준다”고 논평했다.
유근형 파리 특파원 noe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