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NOW] ‘준비’가 삶의 핵심이자 중요 가치… 케이크부터 팝업까지 예약문화 확산 산전검사-난소 나이 검사 주목… IRP 가입자 증가 20대 가장 높아
불확실성에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대신, 미리 계획하고 준비해 실패를 최소화하려는 이가 늘면서 예약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롯데타운 잠실의 크리스마스 마켓 주말 패스트패스 입장권 1차 예약은 10분 만에 매진됐다(위쪽 사진). 편의점 업계도 새로 출시하는 제품을 ‘예약 판매’하고 있는 가운데 세븐일레븐은 모바일앱을 통해 크리스마스 케이크 사전 예약을 받고 있다. 롯데백화점·세븐일레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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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자는 예약 판매되었습니다.”
요즘 편의점에서는 새롭게 출시된 과자를 ‘예약 판매’ 하는 경우가 많다. 예약 판매란 편의점 앱에서 구매하고 싶은 상품을 선결제하고, 매장에서 수령하는 방식이다.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과자 하나도 마음대로 사먹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이런 예약 문화는 사실 낯선 현상은 아니다. 맛집을 가려 해도 적어도 일주일 혹은 한 달 전에 예약해야 한다. 페스티벌이나 공연을 즐기려면 치열한 티케팅으로 사전에 일정을 확보해야 한다. 어느 순간부터 한국 사회는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하고 계획해야만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준비사회’로 진화하고 있다. 이처럼 불확실성에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대신, 미리 계획하고 준비해 실패를 최소화하려는 트렌드를 ‘레디코어(Ready-core)’라 부른다. ‘준비된(Ready)’ 상태가 삶의 ‘핵심(Core)’이자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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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맛집이나 팝업스토어는 대부분 ‘예약필수제’로 운영하는 추세다. 소비자 역시 각종 앱을 활용해 언젠가 가볼 맛집, 전시, 공연 등을 수백 개씩 미리 저장하고 예약해 둔다. 이런 변화에 따라 예약 관련 플랫폼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캐치테이블’은 최근 레스토랑을 넘어 팝업, 디저트, 꽃집 등 다양한 상황 기반 예약 플랫폼으로 확장되고 있다. 오픈애즈에 따르면 팝업 예약 수요 급증으로 캐치테이블의 올해 4∼7월 순이용자 수는 전년 대비 큰 폭으로 상승했다. 올해 6월 1주 차에는 67만 명을 돌파해 작년 같은 기간 대비 2배 이상 성장했다.
레디코어의 두 번째 흐름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줄이고자 미리 대비하는 현상이다. 임신 준비가 대표적이다. 최근 2030 여성들 사이에서는 결혼 전부터 산전검사와 난소 나이 검사(AMH)가 주목받고 있다. 유명 유튜버들이 난소 나이 검사를 받는 모습이 공개되며 화제를 모았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결혼과 출산 시점을 앞당기거나 난자 냉동을 결정하고 있다. 빨리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압박이 아니라, 객관적인 신체 데이터를 근거로 인생 로드맵에 맞는 최적의 출산 시기를 찾으려는 능동적인 준비에 가깝다.
노후 자금 준비도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노후 준비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인식이 확산되며 ‘조기 준비’가 하나의 문화처럼 자리 잡고 있다. 젊은 세대들은 사회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연금저축이나 개인형 퇴직연금(IRP) 같은 장기 금융상품에 투자하며 은퇴 후 미래를 설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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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기업들은 소비자의 ‘준비 성향’에 부응해야 한다. 하나은행은 2023년부터 인공지능 자산관리 플랫폼인 ‘아이웰스’ 서비스를 오픈해 젊은 세대들의 개인 맞춤형 프라이빗뱅킹(PB) 니즈에 부합하는 비대면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한화손해보험은 ‘펨테크 연구소’를 별도로 운영하며 2030 여성들의 커리어·결혼·출산 고민부터 4050 여성들의 갱년기 경험까지 조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지원 활동과 솔루션을 제시한다. 여성들이 가진 고민을 미리 파악하고 대비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앞으로 기업은 갈수록 커지는 불확실성에 대응하고자 하는 소비자의 마음을 읽고 이를 상품과 서비스에 녹여내야 한다. 단지 제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하는 수준을 넘어 소비자의 삶 전반을 함께 설계하는 인생 파트너로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전미영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