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온돌의 발상지’인 이유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자 새로운 관광 코스로 주목받고 있는 찜질방(K-Spa). 한국관광공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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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온돌, 한국만의 발명품이었을까?
사실 ‘바닥을 데워 난방한다’는 발상 자체가 한국의 전유물은 아니다. 열기를 바닥으로 돌려 난방 효율을 높이려는 시도는 인류 역사 곳곳에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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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 빌라의 ‘하이퍼코스트’.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알래스카 아막낙 유적의 온돌. 사진 출처 제이슨 로저
하지만 수많은 시도는 한국처럼 널리 퍼지지 못하고 조용히 사라지기 일쑤였다. 이는 구조의 어려움 때문이다. 온돌에는 열의 전도, 복사, 대류를 복합적으로 활용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자칫 불완전 연소 가스가 실내로 유입될 경우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지기 쉽다. 게다가 지속적인 땔감 공급도 뒷받침돼야 한다. 한국에서 온돌이 널리 자리 잡은 것은 이러한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고 생활문화로 발전시켰음을 뜻하니 온돌의 발상지로 평가받을 만하다.
두만강 ‘겨울왕국’, 온돌 완성지
연해주 불로치카 유적의 옥저인 온돌. 국립문화유산연구원 제공
이렇듯 온돌의 도입은 두만강 유역에서 추운 겨울을 견디며 농경을 유지하고, 안정적인 마을을 이루는 핵심 동력이었다. 기원전 4∼3세기 무렵에는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철기 저온기’가 찾아왔다. 보통 추워지면 농사짓기에 더 불편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그 반대였다. 기온 하강으로 해수면이 낮아지면서 강 하구 주변에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넓은 평야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온돌은 이런 기후 환경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인간의 치열하면서도 지혜로운 적응의 산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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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사천시 늑도 유적의 온돌. 동아대박물관 제공
온돌이 남한 전역으로 본격 확산된 시점은 고구려가 남하하던 서기 5세기부터다. 고구려 군사들은 남한의 전략적 요충지마다 산등성이에 보루를 구축했는데, 이 보루 유적에서는 예외 없이 온돌이 발견됐다. 이후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 들어서면 산속 사찰에서도 온돌이 널리 쓰이게 됐다. 살을 에는 추위를 자랑하는 한국의 겨울, 산이 많은 한반도 지형과 함께 온돌은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온돌은 개경과 남부 지방의 중상류층을 중심으로 점차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시기까지도 온돌은 여전히 귀한 난방 방식이었다. 온돌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시점은 조선 후기다. 17세기 전 세계를 강타한 ‘소빙기’로 혹한이 잦아지면서 온돌 수요가 급증했다. 동시에 양반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온돌은 표준 난방시설이 됐다.
흉노는 온돌을 사랑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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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유라시아 초원에서의 온돌은 오래가지 못하고 흉노가 몰락한 직후 자취를 감췄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나무 때문이었다. 몽골 초원지대는 숲이 빈약해 목재 자원이 제한적이었다. 온돌은 열효율이 좋지만 막대한 땔감을 필요로 하는 난방 방식이다. 풍부한 삼림을 가진 만주나 한반도와 달리, 초원에서는 땔감의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던 셈이다. 이 지역에 온돌이 다시 등장한 것은 1000년이 지난 뒤, 발해 유민들이 몽골 일대로 옮겨와 정착하면서부터다. 온돌은 말 그대로 한국인의 DNA에 새겨진 생존의 기술이었다.
‘찜질방’으로 퍼지는 온돌 문화
최근 중국은 여러 분야에서 한국과 불필요한 기원 논쟁을 벌이고 있다. 온돌도 예외가 아니다. 일부에서는 온돌이 중국 동북 지역, 즉 만주에서 시작됐으니 중국 기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만주에서 쓰이던 온돌은 중국의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지 못했다. 단순히 ‘어디서 처음 나왔느냐’가 아니라, 온돌이 발달하려면 혹독한 기후와 풍부한 삼림이라는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한 주장이다.
온돌은 험준한 산악 지형과 뚜렷한 사계절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한반도 주민들의 치열한 생존 경험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온돌 문화는 오늘날 ‘찜질방(K-Spa)’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세계 곳곳에 퍼지고 있다. 따뜻하게 몸을 누일 수 있는 집에서 인간의 역사는 시작되고 마무리된다. 그런 점에서 온돌이야말로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문명을 일궈낸 한국의 문화가 이어지는 유산이 아닐까.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