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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윤완준]한일령과 한한령

입력 | 2025-11-30 23:18:00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에 대한 중국의 보복은 여러모로 사드 보복을 떠올리게 한다. 일본 여행 자제령은 한국행 단체 관광 금지와 닮았고, 공연·영화 상영 취소 등 대중문화 교류 중단도 비슷하다. 그런데 우리를 겨냥한 한한령은 교묘했다. 2017년 한국 여행상품 판매를 금지했을 때도 중국 정부의 공식 발표는 없었다. 비공개로 자국 여행사들을 불러 은밀히 지시하는 식이었다. 중국 내 롯데마트 영업정지 처분도 명목은 소방법 위반 등이었다. 어떤 조치도 사드 보복임을 내세우지 않았다.

▷지금 벌어지는 ‘한일령’은 한한령보다 강도도 세고 무엇보다 노골적이다. 중국 정부는 일본 여행과 유학 자제를 공식화했다. 일본 수산물 수입을 금지하면서 대만 발언에 대한 보복임을 숨기지 않았다. 지난달 28일엔 상하이에서 열린 행사에 초대된 일본 가수가 노래를 부르던 중 갑자기 조명이 꺼지고 음악이 중단됐다. 공연 관계자에게 무언가 들은 가수는 놀란 듯 입을 벌리더니 황급히 퇴장했다. 한한령 때 우리 가수들 공연이 취소되는 일이 많았지만 이런 방식으로 모욕을 주는 경우는 없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이 들 정도지만 중국은 당연하게 여긴다. 중국은 대만 문제를 어떤 양보도 불가능한 최상위 이익, 즉 ‘핵심 이익’이라고 주장한다. 중국이 처음 대외에 핵심 이익을 언급한 것이 2003년인데, 그때 유일한 대상이 대만이었다. 이후 티베트 문제가 추가됐다. 여기엔 외교나 대화가 끼어들 틈이 없다. 중국 외교관들의 발언에 공공연히 ‘목이 잘릴 것’이니 ‘불장난에 타 죽을 것’이니 하는 비(非)외교적 협박이 등장하는 배경이다.

▷한한령은 2017년 말 문재인 정부가 사드 추가 배치 등을 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3불(不)’을 선언한 뒤 찔끔찔끔 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한중 관계는 물론이고 한국 경제가 입은 내상은 깊었다. 우리 기업들이 중국에서 대거 철수했고, 8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의 대중문화 수출은 여전히 막혀 있다. 중국은 일본에 발언 철회를 압박하지만 현재로선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물러설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한일령의 장기화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변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대만 관련 중국 입장을 이해한다고 한 뒤 다카이치 총리에겐 ‘대만 문제로 중국을 자극하지 말라’고 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핵심 동맹이 난타당하는데 도와주겠다는 말이 없으니 일본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사실 트럼프 1기 때도 미국은 중국의 사드 보복에 관한 한 한국을 돕지 않았다. 트럼프 2기는 한층 더 중국, 러시아 같은 강대국과의 거래로 얻을 경제적 이익을 동맹보다 중시한다. 글로벌 각자도생의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윤완준 논설위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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