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
수년 만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길 위에 섰다. ‘딱 5분만 뛰자’고 다짐했는데, 뺨에 와 부딪히는 가을 공기가 좋아서 느릿하게나마 20분을 뛰었다. 집에 돌아와 따끈한 물로 반신욕을 하고 촉감 좋은 파자마를 꺼내 입었다. 좋아하는 차와 향을 곁에 두고 책상 앞에 앉으니, 오랜 기간 잊고 지낸 것만 같은 안정감이 찾아들었다. 다이어리를 펼치고 해가 가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적어나가다 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하고 싶은 일들이 줄을 이었다.
그동안은 대단치는 않아도 삶에 ‘운동’, 보다 정확하게는 ‘움직임’을 들여놓으려 애쓰며 살아왔다. 점심시간을 쪼개 필라테스를 하고, 바쁜 일과 중에도 틈틈이 윗몸일으키기 100개, 스쾃 100개는 채우곤 했다. 임신과 출산을 거치면서 내가 잃어버린 것은 비단 물리적 체력뿐만이 아니었다. 조심하는 게 좋다고 하니까, 시간이 없어서, 심적인 여유가 없어서…. 이런저런 이유 혹은 핑계로 ‘몸을 쓰는 루틴’을 잃어버렸고, 그 결과 마음 건강까지 퇴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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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의욕이 없는 날이라면 속는 셈 치고 일단 몸을 움직여보자. 드라마 ‘미생’에 이런 대사가 있다. ‘네가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체력을 먼저 길러라. (중략) 네 고민을 충분히 견뎌줄 몸을 먼저 만들어. 정신력은 체력의 보호 없이는 구호밖에 안 돼.’ 다정함도 성실함도 결국 체력에서 나온다. 체력 없이는 좋은 엄마도, 훌륭한 직업인도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마음이 부실한 날엔 몸을 더 써야 한다. 땀 흘려 움직이고 마침내 단단해진 몸의 감각을 확인하고 나면 무른 마음도 함께 단단해진다. 어쩌면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것은 대단한 의지의 발휘보다는 이렇듯 사소한 움직임들을 이어 붙이는 경험인지도 모르겠다.
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