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범 작가·‘저스트고 파리’ 저자
카술레는 프랑스식 갈비찜인 ‘뵈프 부르기뇽(Bœuf bourguignon)’, 고기와 야채를 뭉근하게 끓여내는 보양식 ‘포토푀(Pot-au-feu)’, 스위스 ‘퐁뒤’와 비슷한 ‘라클레트(Raclette)’와 함께 프랑스 겨울을 대표하는 요리다. 이 요리는 한입 떠넣는 순간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데워주는 독특한 힘을 지니고 있다.
카술레는 프랑스와 영국 간 백년전쟁(1337∼1453)의 아픔 속에서 태어났다. 14세기 영국군이 프랑스 남서부의 카스텔노다리를 포위했을 때 남은 고기와 콩을 모두 모아 끓여 먹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는 지금도 이 작은 도시의 자부심으로 남아 있다. 굳은 의지로 삶을 이어가던 사람들의 숨결은 세기를 지나 오늘날까지 이어져, 겨울 식탁에 오를 때마다 그들의 고단한 시간을 잠시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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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도자기 뚝배기인 ‘카솔(Cassole)’에 옮겨진 재료들은 오랜 시간 천천히, 그리고 묵묵히 익어 간다. 표면에 생기는 크러스트는 바삭하고 고소하며, 깊은 속살의 촉촉함과 대비를 이뤄 이 요리의 완성도를 한층 끌어올린다. 툴루즈식은 오리 콩피로 풍미를 더하고, 카르카손식은 양고기와 들새 고기의 짙은 향을 더한다. 이 다양한 레시피는 지역이 지닌 자연과 기후, 사람들의 기억을 그대로 품고 있다.
카술레는 단순한 스튜가 아니다. 시간과 역사, 공동체와 계절, 그리고 삶의 무게를 녹여낸 그릇 하나의 이야기다. 지방의 풍경을 따라 조성된 ‘카술레 길(Route du Cassoulet)’은 겨울 여행객에게 하나의 미식 순례길이 되고, 전통을 지키려는 ‘카술레 기사단’은 이 오래된 음식에 현대적 생명력을 더한다.
얼어붙은 밤, 카솔의 뚜껑을 열 때 퍼지는 포근하고 진한 향기 앞에서 겨울은 비로소 견딜 만한 계절이 된다. 카술레를 한 숟가락 떠먹는 그 따뜻한 순간, 왜 프랑스인들이 이 음식을 세기를 넘어 사랑해 왔는지 자연스레 이해하게 된다. 그것은 그저 하나의 요리라기보다 겨울 속에서 우리가 잃고 싶지 않은 온기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