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 오르는데 예금잔액 증가 이례적 조선-반도체 등 대미투자 자금 쌓아둔 영향 연말 美日 기준금리 변화 방향에 촉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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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원-달러 환율이 1470원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주요 시중은행에서 기업들이 가입한 ‘달러 예금’ 잔액이 한 달 새 21%가량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 들어 최대 폭으로 늘어난 것이다. 조선, 반도체를 중심으로 국내 대기업들이 대미 투자를 위해 달러를 환전하지 않고 예금으로 쌓아둔 영향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달러로 묶인 대미 투자 대기 자금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기준 5대 은행(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의 기업 달러 예금 잔액은 약 537억4400만 달러(약 79조 원)로 집계됐다. 10월 말(443억2500만 달러)보다 약 21%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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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에선 기업들이 달러를 계속 쥐고 있는 주된 이유는 대미 투자 대기 자금이 상당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10월 29일 한미 관세협상 타결로 조선업 협력에 투자하는 ‘마스가(MASGA)’ 프로젝트에 1500억 달러(약 220조5000억 원)를 투자하는 등 3500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은행 관계자는 “마스가에 할당된 1500억 달러뿐 아니라 반도체 기업들도 대규모 대미 투자를 해야 해 달러의 원화 환전을 유보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환율이 결국 꺾일 것이란 기대감을 주지 못하면 상황이 계속 안 좋아질 것”이라고 했다.
기업의 달러 수요는 달러 대출 시장에서도 엿볼 수 있다. 5대 은행의 달러 대출 잔액은 10월 21일까지 67억 달러(약 9조8000억 원)로, 9월 말(64억 달러) 대비 소폭 증가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수입 기업들이 대금을 결제할 때 원화를 달러화로 환전하는 대신 직접 달러 대출을 받아 향후 환율이 떨어질 때 원리금을 갚는 게 유리하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18일 기업 간담회에서 해외 법인의 달러나 수출 대금을 원화로 환전해 달라고 우회적으로 주문하기도 했다.
개인 달러 예금 잔액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 27일 기준 개인이 보유한 달러 예금 잔액은 122억5300만 달러(약 18조 원)로 8월 말(116억1800만 달러)부터 4개월 연속 소폭 증가했다. 김영도 한국금융연구원 은행연구실장은 “원-달러 환율이 오른다고 생각하니 기업과 개인 모두 달러를 보유하려는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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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적으론 미국과 일본의 금리 결정이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11월 경기동향보고서에서 ‘노동 수요 약화’, ‘고용 둔화’가 언급되는 등 금리 인하 기대감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미 금리가 낮아지면 달러 가치가 하락해 원-달러 환율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12월 일본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아진 점도 엔화와 동조된 원화 가치를 끌어올릴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쓸 수 있는 카드는 이제 구두 개입이 아닌 실행인데 (국민연금 활용은) 득보다는 세대 간 갈등을 초래하는 실이 클 수 있어 딜레마”라면서 “미국과 일본의 금리 방향이 한국에 우호적으로 바뀌고 있어 앞으로 원화 가치가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신무경 기자 yes@donga.com
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