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콘진 ‘상생 오픈이노베이션’ 3년간 지속 지원 성과로 대·중견기업-스타트업 ‘동반 성장’
서울 광화문 동아미디어센터에 설치한 국내 최대 디지털 사이니지 ‘룩스(LUUX)’를 통해 채널A B&C와 칼레이도웍스가 공개한 애너모픽 영상. 채널A B&C 제공
“저거 봐, 사람이 뚫고 나올 것 같아!”
지난달 말 서울 광화문 사거리. 신호를 기다리던 시민들의 시선이 일제히 동아미디어센터로 쏠렸다. 건물 모서리를 감싼 듯한 모습의 국내 최대 디지털 사이니지 ‘룩스(LUUX)’에서 신기한 광경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은은한 보랏빛 장막 뒤로 거대한 사람의 실루엣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마치 스크린 안에 갇힌 거인이 세상 밖으로 나오려는 듯 두 손과 얼굴을 힘껏 들이밀자, 평면의 전광판이 고무 막처럼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금방이라도 유리를 깨고 튀어나올 듯한 압도적인 입체감에 시민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넋을 잃은 듯 화면을 바라보는 이른바 ‘디지털 멍’에 빠져들었다. 단순한 옥외 광고판이 도심 한복판의 미디어 아트 캔버스로 변모한 순간이었다.
이 영상은 애너모픽(Anamorphic·착시 기반 입체 효과) 기술을 적용해 제작한 것으로 채널A B&C와 칼레이도웍스, 즉 대형 미디어 기업과 스타트업의 혁신 기술이 빚어낸 ‘합작품’이다. 행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이 대형 영상을 제작한 곳은 경기도 소재 스타트업 ‘칼레이도웍스’. 이날 영상 송출은 경기콘텐츠진흥원(경콘진)이 주도한 ‘상생 오픈이노베이션’이 콘텐츠 스타트업의 ‘성장 등용문’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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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월 27일 경기 성남시 판교에서 열린 ‘2025 상생 오픈이노베이션’의 첫 번째 과정, ‘상생마켓’에 참가한 주요 스타트업 관계자들이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경기콘텐츠진흥원 제공
● 대기업 만나 날개 단 콘텐츠
‘2025 상생 오픈이노베이션’에는 알비더블유(RBW), 현대드림투어, 채널A B&C, LG유플러스, 다날, EBS 등 6개 기업이 파트너사로 참여했다. 올 5월 경기 성남시 판교에서 열린 ‘상생마켓’을 시작으로 10개 스타트업이 실증(PoC)을 진행했고, 각 스타트업에는 5000만 원의 실행 자금과 멘토링이 제공됐다. 그 결과 10개 프로젝트 가운데 절반 이상이 실제 계약으로 이어졌으며 후속 투자 논의도 잇따르고 있다. 특히 엔터테인먼트 분야 성과가 눈에 띈다. 스타트업 ‘오디오가이’는 알비더블유 소속 아티스트 ‘영파씨’의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해 돌비 애트모스 기술을 적용한 공간음향 오디오북을 선보였다. 이 콘텐츠는 현장감을 극대화했다는 호평 속에, 계약 체결과 함께 ‘혁신 프리미어 1000’ 수상이라는 겹경사를 맞았다. ‘보이스 매치’는 아이돌 밴드 ‘원위’의 IP를 활용해 인공지능(AI) 기반 다국어 더빙 기술을 검증하면서 K팝의 글로벌 확장 가능성을 확인했다.
● AI 기술로 산업 현장 혁신
콘텐츠뿐만 아니라 여행·통신·교육 등 산업 전반에서 AI 기술을 접목한 산업 혁신 사례도 이어졌다. ‘트립빌더’는 현대드림투어의 방대한 여행 데이터를 자사의 생성형 AI 기반 추천 기술과 결합해 맞춤형 여행 일정 제안 챗봇을 공개했다. 기술력을 인정받으며 중소벤처기업부의 민간투자 주도형 기술창업지원 사업인 ‘TIPS(Tech Incubator Program for Startup)’ 선정도 앞두고 있다.
LG유플러스와 협업한 기업들도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위시’는 마케팅 데이터를 분석해 트렌드를 예측하는 멀티 모달 AI 솔루션을, ‘넥스트케이’는 영상 콘텐츠 자막을 자동 요약하고 번역하는 솔루션을 개발했다. 두 기업 모두 LG유플러스 내부 연구소와 테스트를 마치고 현재 상용화 계약을 논의 중이다. 이 밖에도 EBS와 협업한 ‘유나이티드어소시에이츠’와 ‘에이스에듀’는 디지털 휴먼과 버추얼 아이돌을 활용한 한국어 교육 콘텐츠를 개발해 에듀테크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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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사례가 ‘뉴작’과 ‘일만백만’이다. 지난해 호반건설과 손잡고 아파트 커뮤니티 시설을 메타버스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던 뉴작은 관련 기술력을 인정받아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인 ‘CES 2025’에서 메타버스 및 콘텐츠&엔터테인먼트 2개 부문 혁신상을 석권했다. 동아일보와 협력해 기사 텍스트를 카드뉴스로 자동 변환하는 솔루션을 개발했던 일만백만 역시 모바일 기기 부문에서 CES 혁신상을 거머쥐었다.
● 3년의 뚝심, 숫자로 증명된 ‘상생’의 가치
경콘진의 이러한 노력은 지난 3년간의 누적 지표로도 뚜렷하게 확인된다.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상생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에 참여한 스타트업은 총 129개사에 달한다. 이 기간 스타트업의 시장 진출을 돕는 비즈니스 미팅은 424건, 전문 컨설팅은 150건 이상 이뤄졌다.
단순한 만남을 넘어 기업 생존과 직결되는 매출과 고용 창출로도 이어졌다. 참여 기업들은 누적 매출액 266억 원을 달성하고, 240건의 신규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올해만 놓고 봐도 3건의 실제 계약 체결, 신규 고용 40명, 투자 유치 25억 원, 매출 88억 원의 성과를 올리며, 해를 거듭할수록 프로그램이 질적으로 고도화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또한 참여 스타트업은 대기업의 인프라를 활용해 기술을 검증(PoC)하고 레퍼런스를 확보할 기회를,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외부의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을 수혈받아 기존 사업을 고도화하거나 신사업을 발굴하는 기회를 얻었다.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윈윈(Win-Win)’형 혁신 구조가 정착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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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웅 기자 jwoong0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