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식 서울시교육감 인터뷰 내신, 단계적으로 절대평가 전환 수능도 논술형-서술형 도입해야… 고교학점제는 제도 보완해 운영 최근 학원 교습시간 확대 조례 논란… 학생 보호 위해 현행시간 지켜낼 것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이 25일 서울 종로구 정독도서관 노벨문학라운지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 교육감은 “초중고교와 대학 교육이 연결되지 않고 입시 때문에 교육 체계가 학생 성장 중심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며 “서울시교육감으로 현장 의견을 정부에 발언하는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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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보수에서는 진보라고 욕먹고, 진보에서는 진짜 진보가 아니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냥 우격다짐으로 하면 안 됩니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정부가 추진 중인 교원의 정치기본권 확대에 대한 의견을 묻자 이같이 답했다. 정 교육감은 “교원에게 모든 정치기본권을 주는 게 당연하지만 교육 정책에 대한 찬반 의사를 말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는 시급하게 주어져야 하고, 정당 가입 등 정치기본권은 충분히 토론해서 결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 교육감은 25일 서울 종로구 정독도서관 노벨문학라운지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고교학점제, 대학입시 제도 개편 등 최근 교육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내놨다. 지난해 10월 취임 뒤 160곳이 넘는 교육 현장을 찾아다닌 그는 “서울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교육 정책이 철학적 명제가 아닌 증거에 기반해 실현될 수 있도록 중앙정부에 의견을 계속 전달하겠다”고 했다. 정독도서관 노벨문학라운지는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기념하고 세계 문학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지난달 마련한 상설 전시 공간이다.
―교원의 정치기본권을 둘러싸고 논란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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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하며 ‘차별과 격차를 해소하겠다’고 했는데 교육 격차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과거에는 교육이 계층 상승의 사다리 역할을 했는데 지금은 격차를 더 심화시키고 있다. 이제는 의무교육의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한다. 단순히 헌법에 규정된 의무로서의 교육, 학령기가 됐으니 누구나 학교에 가야 하는 개념이 아니라 민주시민으로서 자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게 만드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학교는 많고 학생은 적은 시대에는 학생 한 명 한 명이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귀중하다. 모두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고, 공부를 못하는 학생도 원인을 분석해 사회 구성원으로서 소외받지 않고 살 수 있게 해야 한다.”
―취임 뒤 서울학습진단성장센터 구축을 1호로 결재한 것도 같은 맥락인가.
“기초학력 보장뿐 아니라 미래 역량도 갖추도록 교육청의 역할이 바뀌어야 한다. 학교에서 매 학년도 초에 진단 활동을 실시하지만 기초학력 문제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정확한 진단과 원인 파악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올해 서울학습진단성장센터에서는 2만 건이 넘는 진단을 했다. 결과를 토대로 인지, 사회정서, 기초학습 지능 등 학생의 어려움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그 결과에 맞는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지원 학생의 90% 이상이 해독, 쓰기, 셈하기 등에서 유의미한 향상을 보였고 학습 불안이 줄고 자신감이 향상됐다. 서울 지역 평균 학원비 단가 등을 고려했을 때 센터는 연간 205억 원 규모의 학부모 교육비 부담도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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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맞춤형 교육을 하고 학생들의 서로 다른 역량을 고려해 선택의 폭을 넓혀 주겠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준비가 충분하지 않았고 현실이 이상을 따라가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시행되는 제도를 당장 폐지하는 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고 보완하며 장기적으로 안정시켜야 한다. 기초 소양과 기본 학력에 해당하는 공통과목(고1)은 학점 이수 기준으로 성취율과 출석률을 모두 적용하되, 선택과목(고2, 3)은 출석률만 적용하는 게 고교학점제의 취지와 현장 수용성을 모두 고려할 수 있는 방안이다. 장기적으로는 다양한 선택과목이 개설될 수 있게 적정 규모의 교사가 확보되고, 대입도 고교학점제 취지가 연동되게 바뀌어야 한다.”
―대입은 어떻게 개선돼야 하나.
“내신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도 절대평가가 돼야 한다. 고교학점제 취지를 살리고 학생 개개인의 성장을 지원하려면 고교 내신이 단계적으로 절대평가로 전환돼야 한다. 수능은 점차 대입에서 비중이 작아지겠지만, 논·서술형으로 달라진 수능 유형을 도입해야 한다. 학생들에게 ‘오늘 무슨 시험 봤느냐’고 물었더니 ‘끝나자마자 다 잊어버렸다’고 하더라. 몸에 밴 공부가 아니라 암기 공부의 문제점이다. 논·서술형의 가장 큰 문제는 평가의 공정성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논·서술형 평가 시스템을 개발해 시범학교를 운영 중이다. 평가에 문제가 없도록 충분히 토대를 만들어 교육부, 국가교육위원회와 논의하겠다. 대입 개편안에 대한 의견은 다음 달 발표할 예정이다.”
―서울시의회에서 고등학생 학원 교습 시간을 밤 12시까지로 늘리는 조례가 발의돼 논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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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독도서관 노벨문학라운지는 지난달 공공도서관 최초로 개관한 공간이다. 교육감 아이디어로 만들어졌다는데….
“이 공간을 지난 1년간의 성취 중 1번으로 꼽고 싶다. 교육감으로서 갖고 있는 꿈이 잘 배어 있다고 생각한다. 진보나 보수에 갇히지 않고 청소년, 시민과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실현했기 때문이다. 한강 작가뿐 아니라 역대 노벨 문학상 수상자의 책과 영상물을 전시했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대표작이 그렇듯 역사와 인문학적 상상력이 더해질 때 문학이 된다. 학생과 시민이 문학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삶에 대한 질문과 영감을 얻어가면 좋겠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