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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위법 지시에 거부권…‘판단기준’ 모호해 혼선-갈등 우려

입력 | 2025-11-25 19:02:00

李정부 ‘공무원 복종 의무’ 조항 삭제



박용수 인사혁신처 차장이 2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국가공무원법 개정안 입법예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5.11.25/뉴스1


“공무원이 소신껏 일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수평적 직무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 걸로 기대한다.”

인사혁신처는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가공무원법 개정안 입법예고 브리핑에서 법안의 취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상관의 지시가 위법하다고 판단되면 거부할 수 있도록 한 이번 개정에 대해 ‘공직 사회의 책임성과 자율성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란 평가와 ‘위법 판단 기준이 정치 성향마다 다를 수 있어 혼란이 예상된다’는 우려가 엇갈리고 있다.

● ‘위법 지시 거부권’ 명문화

현행 국가공무원법 제57조 ‘복종의 의무’ 조항은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할 때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해당 조항은 1949년 국가공무원법 제정 당시 도입됐다. 제정 초기에는 “의견을 진술할 수 있다”는 단서가 있었지만, 1963년 군사정권 시기 해당 문구가 삭제되면서 위법 지시에 대한 문제 제기 통로가 제도적으로 사라졌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개정안은 조문 제목에서 ‘복종’ 표현을 삭제하고, ‘지휘·감독에 따라 직무를 수행’하도록 구조를 바꿨다. 여기에 상관의 지휘·감독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명백히 위법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이행을 거부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의견 제시나 이행 거부를 이유로 한 불이익 처우 금지 조항도 신설했다.

다만 상관의 적법한 지휘·감독권은 명확히 인정해 합법적인 지시 체계가 위축되지 않도록 했다. 대상은 일반직 공무원뿐 아니라 법관·검사·경찰·소방·군인·국정원 직원까지 포함한다. 지방공무원법도 동일한 방향으로 개정된다. 군은 군인복무기본법 개정을 통해 관련 규정 정비를 추진할 예정이다.

복종 의무 조항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본격적으로 논란이 됐다. 계엄 당시 일부 공무원과 군·경 인력이 명령을 이행한 사례가 알려지면서 위법 소지가 있는 지시에 제동을 걸 법적 근거가 사실상 없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상관의 지시와 법령 사이에서 현장 인력이 책임을 떠안는 구조가 반복됐다는 비판도 뒤따랐다. 정부는 이번 개정을 통해 이 같은 제도적 허점을 보완했다는 입장이다.

개정안은 연말까지 입법예고를 거친 뒤 내년 초 국회 심의를 거쳐 공포되고, 6개월 유예기간을 둔 뒤 내년 하반기 시행될 전망이다. 인사처는 이번 개정이 ‘충직·유능·청렴에 기반한 활력 있는 공직사회 구현’ 국정과제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 “위법 판단 기준 모호”… 혼선 우려도

개정안에 대해 위법 지시에 제동을 걸 최소한의 법적 장치가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적법한 지시는 충실히 이행하고, 명백한 위법 지시는 거부하도록 해 현장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한 중앙부처 공무원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일수록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웠는데, 보호 장치가 생긴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도 “공무원을 권력의 하부 조직처럼 취급해온 관행을 바로잡는 조치”라고 평가했다.

반면 ‘위법’ 판단 기준이 모호하다는 우려도 나온다. 비상계엄을 두고 여권은 ‘불법 계엄’이라고 주장했지만, 일부 야권은 적법한 절차였다고 맞섰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정치적 판단에 따라 위밥 여부를 다르게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부당한 지시가 아니라, 명백히 위법한 지시에 한정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인사처 관계자는 “객관성과 합리성이 인정되는 명백한 법 위반이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현장에서 적용이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종적 위법 판단은 법원이 하게 되므로, 현장에서는 판단이 엇갈릴 수 있다”며 “지휘 체계 내부 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한 지방직 공무원도 “일상 행정에서 법 위반 여부를 개인이 명확히 가리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이로 인해 지휘·보고 체계가 복잡해지고 업무 처리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사처는 시행 전까지 시행령과 복무 규정을 정비하고, 구체적인 판단 기준과 절차를 담은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계획이다. 제도 혼선을 줄이기 위한 교육·홍보도 병행할 방침이다.
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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