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우라늄 농축-재처리에 집중하는 대신 핵잠이라는 거대한 ‘포장’ 가져와 문제 복잡해져 남북 ‘차가운 평화’ 유지돼야 한반도 안정 보장 돼”
12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북토크에서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100원짜리 동전을 들어 비유하며 “동전의 양면과 같이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와 핵연료 주기를 확보하면 핵 잠재력을 따라오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독일이나 일본이 취하고 있는 수준의 핵 잠재력을 가져야 한다. 핵연료 주기, 특히 우라늄 농축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핵 잠재력의 모든 기초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12일 최근 펴낸 신간 ‘좋은 담장 좋은 이웃’ 북토크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한국의 안보 방향에 대해 말하며 이같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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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핵잠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송 전 장관은 “지금 핵잠을 갖고 있는 미국이나 프랑스 이런 나라들은 배타적 경제수역(EEZ)가 1000만㎢인 반면 한국은 40만㎢다”라며 “비유를 한다면 교통이 꽉 막힌 서울 시내 좁은 지역을 순찰하는 데 소나타 10대가 낫겠나, 마이바흐 한 대가 효율적이겠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1년에 국방비 중 장비를 쓰기 위해 17조 원이 드는데 핵잠은 한 대당 최소 3조~5조 원이다. 정해져 있는 예산으로 1년 내내 써야 할 군사 장비 비용을 한 번에 잠수함에 집어넣으면 모든 것이 왜곡된다”고 말했다.
송민순 전 장관은 12일 최근 출간한 ‘좋은 담장 좋은 이웃’ 북토크에서 “미중관계가 급격히 전환되더라도 미국에 대한 안보 의존도를 낮춰야 우리 선택의 여지가 넓어지고 그것이 국가 최고책임자와 외교안보 분야 전문가들이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왼쪽부터 사회를 맡은 김성경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송 전 장관,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최상훈 뉴욕타임스 서울지국장.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송 전 장관은 이날 “미국에 대한 안보 의존도를 낮춰야 우리의 정책 자율성의 범위가 넓어진다”고 거듭 강조했다. “자율의 범위가 넓어져야 미중 관계가 급격히 전환될 때 선택 여지가 생기고, 그런 대외적 선택의 여지를 확대하는 게 국가의 최고지도자와 외교안보 분야에서 종사하는 전문가들이 해야 할 책무”라고도 언급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실장(현 국가안보실장), 6자회담 수석대표 등을 지내며 북한 비핵화 협상 최전선에 있었던 송 전 장관은 새 책과 이날 자리에서 한반도 비핵화의 허상과 관성적인 통일 정책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선 “북한이 갖고 있는 핵무기와 남한의 핵 우산, 즉 미군의 철수를 동시에 이야기하는 것”이라며 달라진 환경에 따른 새로운 방향이 필요함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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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전 장관은 “중국이 뒤를 받치고 있는 한 북한은 붕괴하기 어렵고, 설사 붕괴한다 해도 한국이 원하는 식으로 한반도를 통일하긴 어렵다”고 전망했다. 이날 북토크에 토론자로 참여한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통일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는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송 전 장관은 “책에서도 제안했지만 국무총리실이나 대통령실에 한반도위원회를 만들어 각 부처에서 모두 남북관계를 관여할 수 있도록 조직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최근 출간한 ‘좋은 담장 좋은 이웃’은 송 전 장관이 2016년 ‘빙하는 움직인다’를 펴낸 이후 9년 만의 저서다. 혼란스러운 국제 질서 속에서 ‘한반도 비핵화는 가능한가’ ‘북한은 붕괴할 것인가’ ‘한국의 핵 능력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와 같은 대한민국 안보와 미래 전략을 위한 12개의 핵심 질문과 해법을 담았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