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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주담대 막자 車-사내대출 ‘우회 영끌’… 예담대 6일새 2100억 늘어

입력 | 2025-11-12 03:00:00

[가계대출도 풍선효과]
“집-주식 나만 뒤처지나” 포모 현상
10·15 부동산대책 대출규제에… DSR 제한 해당 안되는 대출 몰려
고금리 P2P대출 잔액 역대 최대… “상환능력 있으면 규제 완화를” 지적




직장인 권모 씨(41)는 10·15 부동산 대책 발표 뒤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로 아파트 매수 계약을 했다. 대출 여력을 알아보려 시중은행은 물론이고 회사의 재무팀, 온라인투자연계금융(P2P) 회사를 찾아 다니기 바쁘다. 10·15 부동산 대책으로 은행에서 받을 수 있는 대출 한도가 줄었기 때문이다.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 금리 연 2%대 사내대출과 금리 연 10%대 P2P 대출로 중도금과 잔금을 치르기로 했다.

10·15 부동산 대책 이후 대출 규제의 ‘무풍지대’인 예금담보대출(예담대), 자동차담보대출(차담대), 사내대출 등을 끌어 쓰는 ‘우회 영끌’이 늘고 있다. 이런 대출 상품은 대출 한도의 기준이 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정에 포함되지 않아 우회 통로가 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시중은행의 예담대 잔액은 이달 들어 2122억 원 늘었고, 고금리인 P2P 대출 잔액도 지난달 말 통계 집계 이래 최대치로 뛰었다.

● 대책 발표 뒤 우회 대출 증가

11일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에 따르면 10일 기준 예담대 잔액은 6조3799억 원이다. 예담대는 이달 들어 6영업일 만에 2122억 원 증가한 것이다. 같은 기간 5대 은행의 주담대 월 증가액(2174억 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예담대가 지난해 같은 달엔 오히려 83억 원 감소한 점을 고려하면 이달에 유독 큰 폭으로 늘었음을 알 수 있다.

기업들의 사내대출도 늘고 있다. 사내대출은 DSR 규제를 피할 수 있고 회사에 따라 저리나 이자 대납의 혜택을 제공한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SGI서울보증으로부터 취합 받은 사내대출 보증 현황에 따르면 올해 1∼10월 사내대출 보증은 11조970억 원으로 전년 동기(11조745억 원) 대비 225억 원가량 증가했다. 6·29 대책 이후인 7∼10월에는 4조5384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03억 원 늘었다.

상대적으로 고금리인 P2P 대출도 빠르게 불어나고 있다. 10월 대출 잔액이 1조4339억 원, 월 증가액은 818억 원이었다. 모두 개편된 통계로 집계되기 시작한 2022년 8월 이후 최대치다. 금리가 연 10% 안팎인 P2P 부동산담보 대출은 4월부터 순증으로 전환했는데, 대출 규제가 발표된 10월 한 달에만 80억 원가량 증가했다.

이 같은 ‘풍선효과’는 6·27 부동산 대책 때부터 조짐이 일기 시작했다. 금리가 연 6∼18% 수준인 저축은행 차담대는 대책 직후 두 달여간 3738억 원 증가했다. 올해 1∼5월 취급액(6793억 원)의 절반을 넘는 수준이다.

● ‘포모’에 주식 투자 수요 몰려

대출 규제 이후 자녀 교육, 직장 이전 등으로 불가피하게 이사를 가야 하는 수요자들이 우회 대출을 끌어모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도가 줄어든 주담대로 자금을 마련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올해 코스피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며 4,000을 돌파한 뒤 주식 투자금을 급히 구하려 우회 대출을 꾀하는 투자자가 늘어난 영향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불장’에서 주식으로 돈을 번 ‘개미’들을 보며 ‘나만 돈을 못 벌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는 것이다. 은행 관계자는 “부동산 구매를 원하는 수요자들은 규제로 인해 주담대가 막히자 예담대나 차담대를 통해 자금을 보충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코스피 상승으로 주식 투자 자금을 확보하려는 사람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차주의 빚 상환 부담이 빠른 속도로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기준금리가 시장의 예상보다 늦게 인하되면 은행, 저축은행, P2P 업권의 연체율이 오르고 금융회사들의 건전성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이보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올해 신용융자는 자본재, 반도체 업종 등에 집중돼 있어 주가가 떨어지면 반대매매에 따른 주가 하락 폭이 커질 우려가 있다”며 과도한 ‘빚투’를 경계했다.

부동산 대출 규제를 손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도한 대출 규제 때문에 대출 수요가 차담대, P2P 등 고금리 대출로 옮겨가는 왜곡 현상이 나타난다”며 “상환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대출을 받도록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재건축 관련 규제를 푸는 등 공급 대책에 더 신경 써야 한다”고 제안했다.



신무경 기자 yes@donga.com
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강우석 기자 ws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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