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인간의 가치’ 대담 AI와 함께 연구하고 창작… 과학계서 AI는 ‘연구동료’로 불려 인공지능이 순식간에 노래 작곡… 기술에 감정 얹혀져야 진짜 예술 미래 세대 교육 변화해야 ‘장인’보다 넓고 다양한 지식 필요… 철학-인문-공동체 가치 가르쳐야
이민석 국민대 소프트웨어융합대 교수, 김형석 작곡가, 이상욱 한양대 철학과 교수, 석차옥 서울대 화학부 교수(왼쪽부터)가 3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동아일보 사옥에서 대담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참석자들은 과학자·철학자·예술가·개발자의 시각에서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연구, 창작 방식을 바꾸는 양상과 AI 시대 인간이 지녀야 할 가치를 논의했다. 동아사이언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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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연구와 창작, 교육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단순한 도구를 넘어 연구와 창작의 ‘동료’로 진화한 AI 앞에서 인간의 역할과 가치는 다시 사회적 논의의 중심에 섰다.
3일 AI가 가져온 변화와 대응 전략, 그리고 AI 시대 인간이 지녀야 할 가치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과학자·철학자·예술가·개발자가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에 모였다. 사회는 물리학을 전공한 뒤 과학철학으로 전향해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연구해온 이상욱 한양대 철학과 교수가 맡았다. AI 기반 단백질 구조 예측 연구를 선도하는 석차옥 서울대 화학부 교수, 1400여 곡을 작곡하며 한국 대중음악계를 이끌어온 김형석 작곡가, 그리고 리눅스 스마트폰 개발부터 이노베이션 아카데미 초대 학장까지 소프트웨어 교육 혁신을 이끌어온 이민석 국민대 소프트웨어융합대 교수가 패널로 참여했다. 이들은 AI가 연구나 창작에서 전문가의 시대를 끝내고 있다고 보면서도 ‘불완전성’이라는 인간의 진짜 가치가 여전히 의미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 생명과학 연구 대전환… 창작에선 전문가 시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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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교수는 인간이 규칙을 일일이 입력하는 대신에 모델의 구조와 학습 목표만 설계하면 AI가 스스로 생물학·화학적 원리를 익힌다는 게 알파폴드의 핵심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AI 연구 동료(co-scientist)’라는 표현을 쓴다”며 “결국 한 명의 과학자가 감당하기 어려운 폭의 지식과 데이터를 통합·활용하는 능력이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작곡가는 “전문가의 시대는 끝났다”고 단언했다. AI가 빠른 속도로 곡을 만들어내는 시대에는 ‘음악을 만드는 기술’보다 ‘무엇을 표현할 것인가’가 더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이민석 교수는 소프트웨어 분야의 급격한 변화를 지적했다. AI가 주니어 개발자가 하던 일을 대신하면서 일자리 구조가 재편되고 있지만 AI는 사람의 역량을 확장시키는 존재라며 긍정적 측면도 짚었다. 그는 “예전에는 개발 도구에 ‘를’ ‘을’을 붙였지만 AI에는 ‘와’를 쓴다. 이게 결정적 차이”라며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이라고 말했다.
● “불완전성이 인간 가치… 미래 교육 바뀌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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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작곡가는 “예술보다 예술가가 중요한 시대가 왔다”며 “사람들이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는 기술이 아니라 음악에 담긴 스토리와 삶, 인간의 불완전성”이라며 “AI와 다른 인간의 진짜 가치다”라고 했다. 또 “AI 음악은 단순한 창작이 아니라 개인의 감정과 생리, 환경까지 반영하는 ‘기능적 예술’로 진화할 것”이라며 “기술 위에 철학과 감정이 얹힐 때 비로소 진짜 예술이 된다”고 말했다. 또 “아이들에게 AI를 직접 써보게 해야 한다”며 “기능 중심 교육은 끝났다. 이제는 철학과 인문학,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AI 시대 인간에게 필요한 가치에 대해 석 교수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불완전성”이라며 “능력주의가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을 존중하는 공동체적 가치를 어릴 때부터 교육해야 AI 시대에도 인간다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AI 시대 교육 방향에 대해 석 교수는 “한 분야를 깊게 파는 교육에서 넓고 다양하게 배우는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민석 교수는 AI가 초급 개발자의 일을 대체하면서 장기적으로는 전문성을 전수받을 경로가 사라질 수 있다며 ‘탈숙련(de-skilling)’ 문제를 지적했다. 이민석 교수는 “10∼20년 뒤에는 중간 세대의 숙련 인력이 비게 될 수도 있다”며 “AI를 조율하고 검증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어떻게 길러낼지가 핵심 과제”라고 했다. 그는 또 “AI가 일자리를 대체하면서 직무가 완전히 재편될 것이기 때문에 기본소득제 같은 사회 안전망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상욱 교수는 “지식(knowledge)과 학습 능력(learnability)을 구분해야 하고 필요한 지식을 자기 일이나 경험과 결합시켜 통찰력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미래 핵심 역량”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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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을 마무리하며 사회를 본 이상욱 교수는 2024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다론 아제모을루의 연구를 인용하며 “AI도 소수의 독점이 아니라 공유된 혜택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이를 위해 윤리적 거버넌스가 필수”라며 “AI를 거부하거나 수동적으로 적응하는 게 아니라 탐색하고 실험하며 바람직한 방향을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가현 동아사이언스 기자 gahy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