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범 작가·‘저스트고 파리’ 저자
가을은 또한 버섯의 계절이다. 프랑스에서 세프는 ‘숲의 왕(Le roi des bois)’으로 불릴 정도로 사랑받는 버섯이다. 남서부 도르도뉴, 오베르뉴, 보르도 근처가 대표 산지이며 둥글고 통통한 반구형의 4cm 내외 크기와 구운 견과류 향, 약간의 단내가 어우러진 깊은 감칠맛이 특징이다. 포르치니는 뵈프 부르기뇽이나 리조토 같은 풍미가 강한 요리에 활용하면 맛이 극대화된다.
조금 더 섬세한 맛을 지닌 지롤 버섯은 여름 말에서 가을 초, 프랑스 전역의 자작나무숲에서 수확된다. 은은한 감칠맛 덕분에 버섯수프, 크림소스 파스타 등 다양한 요리에 활용된다. 버터와 마늘, 파슬리로 살짝 볶거나 달걀과 함께 오믈렛으로 즐기면 제철 버섯의 향을 가장 풍부하게 느낄 수 있다. 프랑스인들은 계절과 산지를 따져 버섯을 선택하고, 식재료에 대한 예민한 감각과 존중을 그대로 요리에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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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저트로는 계절에 맞춘 사과파이가 제격이다. 얇게 썬 사과를 버터와 설탕, 계피와 함께 구워 만든 전통적인 프랑스식 디저트로, 따뜻하게 내고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곁들이면 풍미가 극대화된다. 한입 베어 물 때마다 가을의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다. 사과파이는 디저트에 그치지 않고, 프랑스인의 계절 감각과 가정식 문화를 담은 상징적인 요리이기도 하다.
파리에서 제철 식재료를 즐기는 경험은 문화 체험과 같다. 호박수프와 제철 버섯 요리, 마그레 드 카나르 오 미엘, 사과파이를 차례로 음미하는 동안 제철 재료와 계절의 맛을 살리는 프랑스인의 섬세한 미식 감각을 함께 느낄 수 있다. 계절성과 산지, 조리 과정, 와인 페어링까지 모두 체험하면 파리의 가을 식탁은 한 도시의 풍미와 문화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하나의 여행이 된다.
정기범 작가·‘저스트고 파리’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