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 달라고 조르던 아이가 스스로 책 선택해 독서 삼매경 읽기 통해 인식하는 세상 확장
박선희 기자
책 읽는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건 최근 뜻밖에 목격하게 된 ‘독서의 장면’ 때문이다. 내년에 학교 입학을 앞둔 둘째와 함께 도서관에 갔는데, 몇 권 재밌어 보이는 책을 뽑는가 싶더니 혼자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언젠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바로 그때가 될 것이라고 미처 예상치 못했던 순간이었다.
아이들이 어릴 땐 부모가 곁에 끼고 책을 읽어주는 게 일이고, 나 역시 그랬다. 목이 아플 때까지 읽어줬다. 심지어 만화책도 읽어달라고 해서 연기와 내레이션을 동시에 하다 “이건 진짜 아니지 않냐?”고 묻기도 여러 번 했다. 한글을 빨리 뗐으면서도 꽤 오랫동안 책만 들면 읽어달라고 조르던 첫째를 겨우 떼놓자, 다섯 살 터울인 둘째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런데 마침내, 둘째까지 ‘읽기 독립’의 문턱에 들어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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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세상을 지적으로 탐험하는 출발점이다. 그러니까 정서적·지적 독립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거기엔 ‘읽기 독립’이 있다. 혼자 책을 읽는 아이는 한 인격체로서 세상을 자신만의 속도와 방식, 방향으로 섭렵해 나갈 수 있게 된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새로운 문장, 자극, 상상, 발견이 계속될 것이고, 어느새 아이가 인식하고 체험하는 세상의 진폭은 부모의 것을 훌쩍 넘어설 것이다.
그러니 사실 아이가 처음으로 혼자 책을 읽는 순간은 골방이나 도서관 한 구석에서 벌어졌다 대충 잊혀질 일이 아니라, 각별히 기억되어지고 축하받을 만한 순간인지도 모른다. ‘읽기 독립’ 파티를 해도 모자랄 중요한 순간 말이다.
하지만 온갖 파티와 축하가 넘치는 세상에서 왜 ‘읽기 독립 파티’ 같은 게 없는 건지, 이젠 너무 잘 안다. 그런 걸 하자고 하는 순간, 아이는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할 것이고 다시 ‘엄마가 읽어줘’라고 태세를 전환하겠지. 그래서 다들 눈물 나게 기쁜 이 장면을 마치 아무렇지 않은 척, 못 본 척 쉬쉬하며 넘어간다. 그래도 기억한다. 아이가 처음 책을 혼자 읽게 된 날. 읽는 것과 일평생 계속 좋은 친구가 되기로 한 날. ‘읽는 사람’으로의 첫발을 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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