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도난 잇따르는 프랑스 다른 박물관서도 사건 불구… 보안 강화 노력 미미 문화재 예산 축소 지속… 재정 위기로 대책 마련 난항 CCTV, 박물관 일부에만 적용… 감시 인력은 10년간 190명 축소
24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내 아폴론 갤러리 입구가 닷새 전 도난 사건 여파로 봉쇄돼 있다. 박물관 측은 추가 도난을 우려해 일부 귀중품을 인근 프랑스 중앙은행 지하 수장고로 옮겼다. 파리=유근형 특파원 noel@donga.com
유근형 파리 특파원
중년 남성인 사설 경비업체 직원 단 1명이 현장 주변을 순찰하고 있었지만 근무에 충실히 임한다는 느낌을 주진 못했다. 연신 휴대전화를 들고 개인 업무를 보는 것처럼 보였다. 기자가 다가가 “혼자 지키고 있냐”고 묻자 이 요원은 “인터뷰는 하지 않겠다”면서도 “나도 내가 하는 일이 뭔지 모른다”고 했다.
현장을 지나던 독일인 관광객 알렉스 씨는 “경비 인력이 한 명뿐이라는 게 놀랍다. 독일이었다면 이렇게 큰 사건 뒤에는 경찰을 훨씬 많이 배치했을 것”이라고 했다.
● 경찰 확대 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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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기자는 루브르 박물관의 외벽 2km를 돌아보는 동안 전담 경찰 인력을 한 명도 발견하지 못했다. ‘테러 방지용’이란 문구가 적힌 경찰차 2대가 박물관 한편에 정차해 있었지만 그 안에도 사람은 없었다. 폐쇄회로(CC)TV가 간간이 설치돼 있었지만 주로 지하 부근 사무실을 지키는 용도였다. 건물 외벽과 2층 발코니를 비추는 CCTV 역시 턱없이 부족해 외부 침입을 막기 어려워 보였다.
사건 당시 4인조 절도범들이 사다리차를 타고 침입했던 박물관 남측의 외벽 창문(빨간 점선). 사건 다음 날인 20일에도 임시 조치만 취해진 상태였다. 파리=유근형 특파원 noel@donga.com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개된 도난 당시 영상들 또한 의구심을 자아낸다. 도난범들이 진열장 유리를 절단하고 범행을 감행하는 동안 상당수 관람객은 제지하기보다는 휴대폰으로 영상을 찍는 데 집중했다. 7분여의 범행을 마치고 도난범들이 다시 사다리차를 타고 도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루브르 직원들 또한 “경찰을 부르라”고 했을 뿐 적극적인 제지에 나서지 않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비슷한 유형의 도난 범죄 또한 반복되고 있다. 지난달 16일 파리 국립자연사박물관에서는 20대 중국인 여성이 총 6kg 상당의 금덩이를 훔쳤다. 놀라운 점은 도난 사실조차 뒤늦게 알려졌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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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도난 다음 날인 이달 20일에는 18세기 철학자 드니 디드로를 기리는 북동부 랑그르의 ‘디드로의 계몽의 집’에서 역시 도난이 발생했다. 수 억 원 규모로 추정되는 금화와 은화 약 2000개가 사라졌다. 경찰은 아직 범인을 잡지 못하고 있다.
● 보안 예산 확대 난항
좀처럼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 프랑스 재정위기가 문화유산 보안 강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프랑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약 5.8%로 유럽 주요국 중 최고 수준이다.
적자 축소에 사활을 걸고 있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측은 내년에 문화재 관련 예산 4100만 유로(약 680억 원)를 삭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문화재 예산은 이미 2024년에도 약 1억5000만 유로(약 2500억 원)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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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부족으로 감시 인력 또한 점점 줄고 있다. 르몽드에 따르면 루브르 박물관의 감시 인력은 최근 10년 동안 약 190명이 줄었다. 특히 안내소와 보안 요원 90명을 2023년부터 하청업체에 맡긴 것으로 나타났다. 하청업체 직원의 시급은 12유로(약 1만9000원)로 16유로(약 2만5000원)를 받는 정직원보다 적다.
이날 박물관 안에서 만난 한국인 관광객 김동현 씨 또한 “감시 인력 부족이 도난 사건의 원인이라고들 하는데 정작 직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 근무를 하는 것 같지 않다”고 했다.
● CCTV 확대도 쉽지 않아
CCTV 등 보안 체계를 강화하는 것도 쉽지 않다. 미국 ABC뉴스에 따르면 루브르 박물관은 보안 카메라로 감시할 수 있는 면적이 전체 전시공간 면적(약 7만3000㎡)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특히 유명 작품이 몰려 있는 리슐리외 구역은 25%만 감시가 가능하다. 아예 CCTV가 없는 공간도 상당수이고, 노후화된 기기로 CCTV가 있으나 마나 한 공간도 많다고 전했다.
로랑스 데 카르 루브르 관장 또한 범행 후 의회에 출석해 CCTV 확대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는 특히 “박물관 외벽에 대한 감시가 매우 부족하다”고 시인했다.
예산 부족 외에도 사생활 보호를 중시하는 프랑스 사회의 전통이 CCTV 확대의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날 만난 시민 샤를린 씨는 “CCTV 확대를 반대한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는 “우리는 자유를 사랑하고 24시간 감시당하는 것을 싫어한다. 휴대폰 등을 통해 지금도 충분히 감시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권 또한 소모적인 공방을 지속하고 있다. 야권은 일제히 “루브르 참사는 참을 수 없는 굴욕”이라며 마크롱 정권을 비판했다. 반면 라시다 다티 문화장관은 “프랑스 사회가 최근 수십 년간 주요 박물관의 보안을 소홀히 해 왔다. 특정 정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맞섰다.
유근형 파리 특파원 noe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