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타기’ 유라시아 핵심 군사전술 이후 교역으로 서구 문명과 연결 ◇말발굽 아래의 세계사/윌리엄 T. 테일러 지음·김승완 옮김/400쪽·2만4000원·사람in
‘말 등’에 올라타는 것도 오래 걸렸다. 아시아 서부에선 말을 길들인 뒤에도 한동안 말타기가 재주를 부리는 등의 특별한 경우에만 행해졌다고 한다. 기원전 제2천년기(기원전 2000년∼기원전 1001년) 중반 고대 시리아 도시 ‘마리’의 왕이 받은 편지에는 “말 말고, 잡종 동물이나 더 위엄 있는 전차를 탈 것”을 권하는 대목이 나온다. 실제 전투나 세밀한 제어가 필요한 상황에서 말타기는 위험하고 신뢰하기 어려웠음을 보여준다.
말을 문명을 재편한 주역으로 조명한 책이다. 미국 콜로라도대 조교수이자 고고학 큐레이터인 저자는 몽골 초원에서 말의 뼈와 유전자를 연구한 현장 고고학자이기도 하다. 저자는 고대 유전체 분석과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같은 과학기술을 통해 안장과 등자 같은 혁신적 도구가 언제 등장했는지, 또 길들여진 말이 어떻게 각 문명에 편입됐는지 등을 꼼꼼하게 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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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말타기는 유라시아 전역에서 핵심 군사 전술로 자리 잡았다. 기원전 9세기경 아시리아의 벽화에는 처음으로 기병대가 제대로 묘사됐다. 이 부조에는 두 명이 한 조를 이뤄 움직이는 초기 기병의 모습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한 명이 두 마리의 고삐를 잡고 다른 한 명은 활을 쐈다. 아직 안장이나 등자가 없었기에 그들은 다리의 힘만으로 몸을 지탱하며 싸워야 했다.
말타기의 발전은 고대 세계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꿨다. 분쟁이나 질병, 생태적 재난에 직면했을 때 말을 탄 사람들은 누구보다 빨리 이동할 수 있었다. 말타기라는 ‘혁신’을 통해 이전까지 멀리 떨어져 있던 지역들이 긴밀히 연결됐고, 때로는 달갑지 않은 접촉도 잦아졌다. 유라시아에서 ‘세계화’의 첫 징후가 나타난 셈이다. 초원과 사막의 길이 열리며, 이후 동아시아 왕조들과 서구 문명 사이를 잇는 교역과 외교의 길이 형성됐다.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에서 말은 일상에서 멀어진 존재가 됐다. 일부 농사나 관광, 스포츠 외에는 보기 힘들다. 그러나 말의 흔적은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다. 산업화 이후의 운송 인프라는 말이 남긴 기술과 도로 체계, 전통 위에 세워졌다. 책을 읽다 보면 인간이 말을 길들이는 과정에서 오히려 인간 자신이 말이라는 존재에 길들여졌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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