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현 강동경희대병원 혈관외과 교수 말초동맥이 좁아지거나 막히면 팔다리 끝으로 혈액 공급 어려워 걷거나 뛸 때 종아리가 저리다가 심하면 발 상처 안 낫고 피부 변색 당뇨-고혈압 등과 위험요소 같아… 고령-흡연자는 정기 검진 받아야
조진현 강동경희대병원 혈관외과 교수는 “고혈압이나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이 늘면서 40, 50대 말초동맥질환 환자가 증가하는 추세”라며 “고혈압, 당뇨병, 흡연 같은 위험 요인이 있는 사람은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강동경희대병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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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가 저리면 보통 허리부터 의심한다. 70대 김정근 씨(가명)도 그랬다. 증세가 시작된 건 1년 전. 걸을 때마다 종아리가 끊어질 듯 아프고 좀 쉬면 다시 괜찮아졌다. 허리가 원인이라고 생각해 정형외과를 찾았다. 약한 척추관협착증 증세가 있다고 했다. 한동안 물리치료와 주사 치료를 병행했지만 통증은 그대로였다.
지인에게서 혈관에 이상이 생겨도 다리가 저릴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강동경희대병원 혈관외과를 찾았더니 지인 말이 맞았다. 조진현 강동경희대병원 혈관외과 교수는 김 씨의 사타구니 부분 대퇴동맥이 30cm 이상 막혔다며 말초동맥질환 진단을 내렸다.
혈관은 한 번 막히거나 터지면 크게 문제가 된다.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같은 심·뇌혈관 질환이 대표적이다. 다리 쪽 정맥이 막히는 하지정맥류도 비교적 흔하다. 말초동맥질환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 국내 성인 4.6%가 환자로, 유병율도 높진 않다. 그래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식습관이 서구화하면서 발병 위험이 커졌고, 치료 시기를 놓치면 피가 통하지 않아 괴사한 부위를 절단해야 할 만큼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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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맥은 심장에서 나온 혈액을 온몸으로 실어 나른다. 심장에서 가까운 큰 길이 대동맥, 손발 끝까지 가는 작은 길이 말초동맥이다. 노폐물과 혈전 등으로 말초동맥이 막히면 팔다리에 혈액을 실어 나르지 못한다. 특정 부위로 가는 혈액이 부족해지면서 여러 증세가 나타나는 게 말초동맥질환이다.
말초동맥 이상은 전신 동맥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신호일 수 있다. 실제 환자 절반 정도는 심·뇌혈관 질환을 동시에 안고 있다. 김 씨 역시 검사해 보니 심장에 혈액을 보내는 관상동맥이 막혀 있었다. 조 교수는 관상동맥에 작은 관(스텐트)를 넣어 뚫은 다음 딱딱한 노폐물을 제거하고 통로를 넓혔다. 조 교수는 “말초동맥질환 환자의 약 30%는 심·뇌혈관 질환으로 사망에 이른다. 김 씨는 다리가 저려서 병원에 왔다가 더 큰 병까지 잡은 셈”이라고 했다.
말초동맥질환은 주로 하체에 생긴다. 골반 부근 동맥이 막히면 장골동맥폐색증, 다리 동맥이 막히면 하지동맥폐색증이다. 하지동맥폐색증은 원인 부위에 따라 대퇴동맥, 슬와(오금)동맥, 종아리동맥 폐색증으로 구분한다.
대표 증세는 다리 통증이다. 걷거나 뛸 때 종아리가 아팠다가 잠시 쉬면 가라앉는다. 골반 쪽 동맥이 막히면 허벅지나 엉덩이 쪽에서 통증이 느껴진다. 당김, 뻐근함, 묵직함, 경련 등 호소하는 통증은 저마다 다르다.
증세는 경중에 따라 6단계로 나뉜다. 1∼3단계는 다리 통증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거리로 구분한다. 평지에서 400m 이상 걸었을 때 다리가 아프기 시작하면 1단계, 200∼400m는 2단계, 200m 이하는 3단계에 해당한다. 조 교수는 “움직일 때만 통증이 나타난다는 뜻에서 이 증세를 ‘간헐적 파행’이라고 부른다. 보통 환자들은 2단계부터 이상 신호를 알아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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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리 질환과 증세 비슷
다리 통증이 주요 증세인 1∼4단계에선 엉뚱한 병원을 전전하는 환자가 적지 않다. 허리 질환으로 착각해 정형외과, 신경외과, 한의원 등에서 진료를 받다가 치료 시기를 놓치기도 한다.
허리 질환과 혈관 질환 모두 다리 저림 증세가 나타난다. 하지만 통증을 느끼는 상황은 다르다. 허리가 원인인 경우엔 자세를 바꿀 때 통증이 생긴다. 앉았다가 일어서거나 누웠다가 앉을 때 다리가 찌릿하거나 뻐근하다. 반면 말초동맥질환은 다리를 움직일 때만 아프다. 통증 간격도 허리 질환은 불규칙하지만 말초동맥질환은 200m 거리, 계단 5층 높이처럼 일정하다.
5, 6단계에 접어들면 발 상처가 잘 낫지 않고 피부가 검게 변한다. 발가락과 발등 사이가 괴사하면 5단계, 발등 위쪽으로 괴사가 진행되면 6단계에 해당한다. 막힌 혈관이 다리 아래쪽과 가까울수록 괴사 확률은 커진다. 조 교수는 “보통 상처는 1, 2주가 지나면 자연적으로 낫는다. 2주가 지나도 상처가 그대로라면 바로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다.
다리 통증은 흔히 겪는 일이다. 찢어질 듯한 고통이 아니라면 ‘운동 부족으로 근력이 떨어졌겠거니’ 하고 넘기기 쉽다. 심지어 통증 때문에 덜 움직이다가 증세 자체를 놓치는 경우도 많다. 간헐적 파행 증세를 확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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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아리나 허벅지 통증은 서서히 심해진다. 노폐물이 조금씩 쌓이면서 혈관이 점차 막히기 때문이다. 갑자기 혈관이 막히는 특수 상황도 있다. 부정맥이나 심장 수술 과정에서 생긴 혈전이 동맥을 틀어막는 경우다. 조 교수는 “급성동맥폐색증이 오면 다리 전체가 창백해지고 극심한 고통을 느낀다. 초응급 상황이므로 바로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다.
● 고혈압-당뇨-고지혈증 있으면 위험
첫째, 흡연이다. 담배는 혈관을 좁게 만들고 혈전 생성을 촉진한다. 흡연자는 비흡연자보다 말초동맥질환 발병 위험이 2∼4배 높다. 금연은 필수다. 둘째, 고혈압과 당뇨병이다. 혈압이 높으면 혈관벽이 손상되고 혈당이 높으면 혈관이 점차 좁아진다.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
셋째, 고지혈증이다. 나쁜 콜레스테롤이라 불리는 저밀도지단백(LDL)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이 높으면 혈관에 지방이 쌓인다. 등푸른 생선, 견과류, 채소, 저지방 식단으로 콜레스테롤 수치를 관리해야 한다.
넷째, 비만과 운동 부족이다. 체중이 많이 나가면 혈관에 부담이 커지고 몸에 해로운 호르몬이 증가한다. 규칙적인 운동과 적정 체중 유지가 혈관 건강에 도움이 된다. 하루 한 번 30분 이상 걷기, 달리기, 산책, 수영 등 유산소운동을 하고 고지방 음식 섭취를 줄여야 한다.
다섯째, 나이와 가족력이다. 말초동맥질환은 60대 이상에서 주로 발병하며 70대 이상에서는 더 증가한다. 가족력 자체는 유전성이 크지 않지만 비슷한 생활 습관을 공유하기 때문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조 교수는 “말초동맥질환은 평생 관리가 중요하다. 치료 후 완치됐다는 생각에 금연, 운동, 건강한 식습관 등을 소홀히 하면 다시 발병할 위험이 있다”고 당부했다.
● 전조증상 없어 정기 검진 필요
이 질환은 전조 증상이 없다. 장골동맥은 50∼70%, 하지동맥은 70% 이상 막혀야 다리 통증이 나타난다. 따라서 고위험군 환자라면 증상이 없더라도 진단받을 필요가 있다.
여러 진단 방법 가운데 기본은 발목상완지수(ABI) 측정이다. 양팔과 양다리 혈압을 비교해 발목 혈압이 10% 이상 낮으면 이상신호로 본다. 더 정밀한 검사는 혈관초음파,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등으로 가능하다.
치료는 단계적으로 이뤄진다. 걷는 데 문제가 없다면 금연, 식단 조절, 규칙적인 걷기 운동으로 관리한다. ABI가 낮아도 다리 통증이 심하지 않을 땐 혈전 생성을 막는 약물을 처방하기도 한다. 이와 함께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도 관리한다.
다리 통증이 심해지면 시술이나 수술을 고려한다. 좁아진 혈관 부위가 짧거나 증상이 3단계 이하라면 풍선을 이용해 혈관을 넓히거나 스텐트를 넣어 좁은 혈관을 유지한다. 가느다란 관을 혈관에 넣어 내벽 찌꺼기를 깍아내는 죽종절제술도 있다. 막힌 혈관이 짧고 사타구니 근처라면 피부를 절개해 내벽 찌꺼기를 제거한다. 막힌 혈관이 길거나 증상이 4단계 이상이면 환자의 정맥이나 인조혈관을 이용해 우회수술(바이패스)을 진행한다.
말초동맥질환은 적기 치료가 중요하다. 일찍 발견하면 간단히 치료할 수 있지만 늦으면 순식간에 괴사가 진행되기도 한다. 조 교수는 “고령 환자들은 잘 걷지 않아 증세를 모른 채 병을 키우는 경우가 많다. 고위험군이라면 매일 종아리가 아플 때까지 걷고 정기적으로 ABI를 검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