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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불안할 때 믿을 건 금-은”…‘1g 콩알금’까지 사모아

입력 | 2025-10-11 01:40:00

[위클리 리포트] 무섭게 질주하는 금-은
올해 금값 50%, 은값 70% 상승… KRX 금 현물 거래액 7배로 증가
국내외 시세차 ‘김프’ 10% 돌파

“금값 랠리 절대 놓칠 수 없다”… 운용사들 ETF 상품 발행 경쟁
골드바 판매, 평소의 3배로 증가

트럼프發 불확실성이 주된 요인… 실물 투자로 인플레이션 대비↑
“상승세 유지하긴 무리” 경고도





올해 초 직장에 입사한 사회초년생 이모 씨(24)는 최근 6개월간 매달 1g짜리 ‘콩알금’을 하나씩 주문하고 있다. 콩알금이란 콩알에 비견될 정도로 작은 금을 뜻한다. 콩알금의 가격은 10만 원대 중후반∼20만 원대 초반. 인터넷 쇼핑몰에서 주문하면 유리 케이스에 담겨 보증서와 함께 집으로 배달된다. 소량이지만 틈틈이 금을 모으는 이들을 가리키는 ‘소금족’이란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이 씨는 “사회초년생이라 돈이 많진 않지만 조금씩이라도 금에 투자하고 싶어 콩알금을 알아봤다”며 “금값이 계속 상승할 것이라 믿기에 앞으로 콩알금을 꾸준히 모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금과 은의 가격이 질주하며 국내에서도 금과 은에 투자금이 몰리고 있다. 소금족들은 생일 때 가족들이 돈을 모아 사주는 선물로 콩알금을 택한다. 용돈이 생길 때마다 콩알금을 야금야금 사 모으는 이들이 늘다 보니 콩알금 전용 보관함도 등장했다. 은 투자족들은 각종 기념 은주화, 실버바 등을 틈틈이 사 모은다.


● 금과 은으로 빨려 들어가는 투자금

금과 은이 동시에 세계 시장에 넘치는 돈을 빨아들이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금 현물 국제 시세는 약 50%, 은 현물은 약 70% 상승했다. 금은 8일 사상 처음으로 트로이온스(31.1034768g)당 4000달러(약 570만 원)를 돌파하기도 했다. 같은 날 은은 트로이온스당 가격이 49달러를 넘기며 2011년 4월 이후 14년 만에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국내에선 금 투자 열풍이 유독 뜨겁다. 1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달 2일까지 KRX 금 현물 거래액은 10조9590억 원에 이른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1조5110억 원이었다. 1년 사이에 거래액 규모가 7배 이상으로 급성장했다. 해당 기간 거래량도 7059만 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475만 건)의 약 5배 수준이다. KRX 금 현물 거래는 증권사 계좌를 통해 최소 1g 단위로 사들일 수 있다. 투자 수익에 대한 양도소득세가 붙지 않아 개인 투자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현물 금값이 국제 시세 대비 비싼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도 두드러진다. KRX 금 현물 가격은 국제 금값 대비 10%가량 비싸졌다. 김치 프리미엄을 피하려는 이들은 상장지수펀드(ETF) 투자를 선택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직장인 김모 씨(38)도 금 현물 ETF를 매달 10만 원어치씩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에서 모으고 있다. 그는 “계속 오르는 금값 랠리를 놓칠 수 없고, 자산 분배 차원에서라도 금 투자를 일정 부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직장인 김모 씨(29)는 “은행 이자가 너무 낮다고 생각해 지난달 말 금 현물 ETF를 50주 매수했다”며 “금값 조정 국면이 오면 추가 매수할 것이고, 은 ETF 매수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ETF 투자가 늘자 국내 자산운용사들의 신규 상품 경쟁도 치열하다. 신한자산운용은 올해 3월 ‘SOL 국제금커버드콜액티브’, 6월에는 ‘SOL 국제금’을 연달아 출시했다. 올해 6월에는 삼성자산운용이 ‘KODEX 금 액티브’를, 미래에셋자산운용은 ‘TIGER KRX 금 현물’을 나란히 공개하며 금 ETF 시장이 뜨거워졌다.

금융회사들의 보수율 전쟁도 벌어졌다. 금 ETF가 동일한 기초 자산을 추종하니 보수율 인하 외에 특별한 차별화 포인트를 찾기 어려워서다. 2021년 12월 상장된 한국투자신탁운용의 ACE 금 현물의 보수율은 0.5% 수준이었으나 0.19%로 인하됐다. 후발 주자인 TIGER KRX 금 현물이 보수율을 0.15%로 책정하자 터줏대감도 인하 행렬에 동참한 것이다. NH아문디자산운용의 HANARO 글로벌금채굴기업은 원래 0.45%이던 보수율을 지난달 초 0.15%로 내리며 보수율 인하에 동참했다.

금 실물을 인수하지 않고 은행 계좌를 활용해 금을 0.01g 단위로 살 수 있는 금 투자 상품인 골드뱅킹도 관심이 뜨겁다. 골드뱅킹을 취급하는 3개 은행(KB국민·신한·우리)의 9월 말 기준 골드뱅킹 잔액은 1조4314억 원에 달했다. 8월 말(1조1393억 원)에 비해 2921억 원 늘었다.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약 9개월 만에 6492억 원이 증가했다.

골드바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에서 팔린 골드바는 1116억 원어치에 달한다. 올해 1∼8월에 월평균 405억 원어치가 팔렸는데, 지난달 판매액이 평소의 약 3배로 늘어난 셈이다.


● ‘난세’에 주목받는 안전 자산

금과 은에 관한 관심이 치솟은 이유는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경제가 어려움에 빠져 어디로 흘러갈지 예측이 어려울 때 투자자들은 안전 자산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위험 자산은 경제위기를 맞이하면 폭락해 큰 손실을 불러오는데, 금과 은 같은 안전 자산은 손실 우려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금이나 은은 희소성이 있는 데다 발행 주체가 부도날 일도 없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금 현물 가격은 트로이온스당 1000달러를 처음 넘어섰고,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국면에는 2000달러 선을 돌파했다. 글로벌 위기 때마다 안전 자산으로서의 가치가 재조명된 셈이다.

현재 가장 큰 불확실성으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전쟁이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1월 취임한 후 주요국들에 관세를 압박하고 있다. 돌연 새로운 관세를 발표하며 불확실성을 키우자 안전 자산을 선호하는 심리도 커졌다. 이런 와중에 미국에서 예산안 처리 불발로 1일부터 연방정부의 일시적 업무정지(셧다운)가 발생하면서 불확실성이 더 커졌다. 각종 경제 지표가 공개되지 않는 ‘깜깜이 기간’이 이어지자 일단은 투자금을 안전 자산 쪽으로 옮기자는 분위기가 생겼다.

게다가 관세 부과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도 커졌다. 이에 투자자들은 금과 은 같은 실물 자산에 투자해 위험을 회피하려 하고 있다.

약달러 흐름도 금과 은 가격 상승에 한몫하고 있다. 모건스탠리 등에 따르면 달러는 올해 상반기(1∼6월) 내내 약세를 이어가면서 약 11% 떨어졌다. 이는 반기 기준으로 1973년 이후 최대 하락률이다. 달러 가치는 하반기(7∼12월) 들어 일부 회복됐지만 약달러 기조는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추가 정책 금리 인하에 나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금리가 낮아지면 시중에 유동성이 늘어나면서 달러 가치는 약세를 보이게 된다. 이 경우 달러로 가격이 매겨진 금이나 은이 상대적으로 싸지는 효과를 얻어 투자 수요가 몰리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전망에 힘입어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최근 2026년 말 금 가격 전망치를 트로이온스당 기존 4300달러에서 4900달러로 올려 잡았다. NH투자증권도 최근 금 가격 목표치(향후 12개월 기준)를 트로이온스당 4500달러, 은 가격은 50달러를 제시했다. 이러한 가격 전망은 투자자들 사이에 ‘포모’(소외될 것에 대한 두려움) 심리를 자극하며 다시금 투자를 유인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황병진 NH투자증권 FICC리서치부장은 “연준의 통화정책이 완화 기조를 유지하는 한 당분간 귀금속 섹터에 대한 전략은 ‘단기 조정 시 매수 및 비중 확대’로 가야 한다”며 “금 가격의 강세가 전개되면 은 가격의 상대적인 저평가 매력도 주목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예찬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추가 금리 인하 여력이 많기에 금값도 향후 상승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출범한 지 1년도 안 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불확실성이 여전하기에 이러한 불확실성이 금값의 하단을 지지해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단기간에 너무 가파르게 상승한 금과 은 가격이 단기 조정을 받거나 상승세가 둔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자산운용사 본부장은 “금 가격이 짧은 시일 내에 50% 이상 상승했기에 이런 상승 속도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보는 것은 다소 무리”라고 주장했다. 스위스 기반 글로벌 금융기업 UBS의 조반니 스타우노보 애널리스트도 “(금값) 변동성이 10∼15%에 달한다는 점을 투자자들은 인지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한재희 기자 hee@donga.com
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강우석 기자 ws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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