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 수단 넘어 실물경제 연결 ‘디지털 금융 혁신’이 온다 월간 결제 규모 1조 달러 넘어서 원화 스테이블코인도 논의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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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 시작된 이래 지속해서 진화를 거듭해 온 화폐의 역사가 현재 분산원장기술(DLT·Distributed Ledger Technology)이라는 혁신적 기술과 조우하고 있다. 화폐와 분산원장기술의 운명적 만남을 통해 잉태된 스테이블코인은 비트코인 등 기존 가상자산에 내재한 ‘극심한 가격 변동성’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설계된 디지털 자산의 한 종류다. 스테이블코인의 태동은 법정화폐의 안정성이 블록체인의 효율성과 결합함으로써 투기적 투자 수단을 넘어 실물경제와 기존 금융 시스템을 연결하는 새로운 인프라가 등장했음을 의미한다. 스테이블코인은 2014년 테더의 USDT 출시 이후 급격한 성장을 거듭해 올해 상반기 기준 전 세계 총공급량이 2500억 달러(약 345조 원), 월간 결제 규모는 1조4000억 달러(약 1940조 원)에 달한다. 스테이블코인과 기업 자금 관리 재설계 전략을 다룬 DBR(동아비즈니스리뷰) 9월 2호(425호)기사를 요약, 소개한다.
● 규제 정비로 제도권 편입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핵심은 ‘신뢰’다. 유럽연합(EU)의 MiCA 법안 발효와 미국 지니어스법안 통과는 시장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지니어스법은 스테이블코인 준비자산을 미국 달러 예금이나 단기 국채로 제한해 달러 패권을 공고히 하면서 혁신을 재촉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의 양대 산맥 중 USDC 발행사인 서클은 사업 초기부터 뉴욕주 비트라이선스를 획득하고 규제 당국의 신뢰를 확보하는 데 집중했다. 반면 다른 한 축인 USDT 발행사 테더는 상대적으로 규제 회피적으로 접근했던 탓에 준비금 운용의 투명성 논란에 휘말리고 있다. 두 회사의 사례는 스테이블코인의 신뢰가 준비자산의 건전성과 규제 환경에 기반한다는 점을 명확히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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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국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이 구매력 보존 수단으로 확산하고 있다. 물가 급등이나 환율 불안정 지역 주민들이 스마트폰 지갑만으로 달러 연동 자산에 접근해 현지 통화 가치 하락을 피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 글로벌 기업들 잇따라 도입
글로벌 선도 기업들은 스테이블코인을 핵심 사업 모델에 접목하고 있다. JP모건은 기존 은행 예금을 블록체인에서 토큰화하는 ‘JPMD’(JP모건 예금 토큰)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보호를 받는 금융상품의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블록체인의 프로그래밍 가능성과 24시간 실시간 결제 기능을 결합한 혁신적 모델이다.
결제 업체들도 적극적이다. 미국의 핀테크 기업 스트라이프는 스테이블코인 인프라 업체 ‘브리지’를 11억 달러에 인수해 핵심역량을 내재화했고 글로벌 카드 네트워크 업체 비자(Visa)는 USDC 기반 정산 테스트를 진행하면서 자체 토큰화 플랫폼 VTAP 구축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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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망 관리 차원에서의 활용도도 높다. 예를 들어 글로벌 제조 대기업이 아시아 소재 하청업체에 대금을 지급하는 B2B 거래에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할 경우, 복잡한 결제 및 정산 절차를 간소화할 수 있다. 이는 거래 투명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실시간 자금 이동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환율 변동 위험을 분산하는 등 다양한 효과를 낼 수 있다.
● 원화 스테이블코인 성공 가능성
한편 국내에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를 둘러싸고 복잡한 이해관계가 조성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통화정책 유효성 약화와 금융 안정성 문제를 이유로 ‘관리·감독이 가능한 은행권 중심’ 발행을 제시하고 있다. 반면 주요 핀테크와 빅테크 기업들은 국내 금융산업의 혁신과 경쟁력 제고를 위해 비은행 사업자의 발행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통 금융기관들은 신뢰와 자본력을 바탕으로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주체 역할을, 대기업들은 플랫폼을 활용한 유통 채널 역할을, 핀테크·빅테크 기업들은 혁신 솔루션 기반의 신규 시장 창출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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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적 안정성도 중요하다. 여러 블록체인을 연결하는 브리지(서로 다른 블록체인 간 자산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연결 시스템)의 보안 취약성을 보완하고 원화를 스테이블코인으로 바꾸는 온·오프램프(법정화폐와 암호화폐 간 교환 서비스)의 수수료와 처리 시간을 최적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사업 모델을 재설계할 준비가 필요하다. 스테이블코인을 기존 결제 수단의 보조로 활용하는 수준으로는 경쟁력에 한계가 있다. 자동 정산, 조건부 지급, 에스크로 등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
신우석 베인앤드컴퍼니 파트너 Wooseok.Shin@bain.com
정리=장재웅 기자 jwoong0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