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 25년째 전 고점 못 뚫는 코스닥 올해 들어 코스닥 상승률 23%… 불장 뿜은 코스피는 41% 상승 전 고점은커녕 ‘천스닥’도 아득, 우량주들은 코스피로 ‘이전 상장’ 부실기업들 줄줄이 상장 폐지돼… 이 대통령 “코스닥 정상화 과제” 코스닥 상장 위한 시총 기준 상향… 2028년까지 ‘40억 원→300억 원’ “코스닥 남는 기업 인센티브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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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 상승폭의 절반, 눈물짓는 ‘코스닥 개미’
한국 증시가 활황이지만 코스닥 투자자들의 한숨은 늘고 있다. 올해 코스닥 지수 상승 폭은 코스피의 반 토막가량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나스닥’을 목표로 출범한 코스닥은 언제쯤 화려하게 질주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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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닥 개미’들은 추석 연휴를 앞두고 더욱 심란하다. A 씨는 최근 코스닥 종목에 투자했던 주식을 손절해 3000만 원에 눈물을 머금고 전량 매도했다. 그는 “추석 명절을 앞두고 돈이 필요한 투자자들이 코스닥에서 대거 주식을 파는 경향이 있어 일단 모두 팔아버렸다”며 “코스닥에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처럼 믿고 장기간 투자할 종목이 없다고 본 투자자들이 금세 자금을 거둬들인다”고 말했다.
최근 코스닥에서 상장 폐지된 벤처캐피털 에스유앤피의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곡소리가 들린다. 이 회사 투자자들이 모인 주주연대의 백승만 대표는 “에스유앤피 주주연대 참여자 중 평생 모은 돈 20억 원을 투자한 70대 어르신은 거의 전 재산이 묶였다”며 “한 40대 여성 투자자는 이번 상장폐지로 남편과 다투다 이혼까지 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는 “회사가 상장폐지 과정에서 투자자들에게 정보도 제대로 공유하지 않아 투자자들은 더욱 답답했다”고 토로했다.
● 전 고점 근처에도 못 간 코스닥
최근 투자업계에서는 ‘코스닥 정상화’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10일 국민성장펀드 보고대회에서 “코스닥 시장 정상화는 매우 중요한 과제로 내부적으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며 “코스닥 시장 전체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있어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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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 구글, 엔비디아, 메타, 아마존, 테슬라 등 뉴욕 증시를 주도하는 이른바 ‘매그니피센트 7(M7)’이 모두 뉴욕증권거래소(NYSE)가 아닌 나스닥에 상장된 것과는 대조된다. 코스닥은 본래 기술 중심의 주식시장을 만들겠다며 1996년 출범했다. 하지만 당초 목표로 했던 ‘한국의 나스닥’은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나온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코스피는 반도체나 지주사, 금융, 조선, 방산, 원자력 등이 주가 상승을 이끄는 반면에 코스닥은 매력적인 주도주가 마땅히 없다”며 “큰돈을 장기간 투자할 만한 종목이 없으니 주가가 꾸준히 오르기 힘든 구조”라고 말했다.
● ‘상폐’ 소식에 개미들 대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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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폐지된 이트론 주주들은 개인투자자들의 의견을 교환하는 플랫폼인 ‘액트’에 “부실기업 강제 청산법, 우리의 국장(국내 주식시장)이 살길은 그것뿐” “국장은 더 이상 회생이 불가하다”라고 호소하고 있다.
2000년 ‘닷컴 버블’ 사태로 코스닥이 폭락했던 기억도 투자자들이 코스닥을 꺼리는 요인이다. 1999년 초에는 700 선이었던 코스닥이 이듬해 3월 단숨에 역대 최고점인 2,834.40까지 치고 올랐던 적이 있다. 인터넷이 급속 보급되면서 ‘닷컴’이라는 이름만 붙으면 아무리 작은 기업이라도 몸값이 천정부지로 뛰던 때다. 수많은 인터넷 벤처기업들이 완화된 요건 덕에 코스닥에 상장했다. 그렇지만 닷컴 기업들이 아이디어를 사업화해 수익을 내기 쉽지 않다는 인식이 투자자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미국 나스닥과 함께 코스닥도 급락했다. 2000년 말에는 코스닥 지수가 고점 대비 약 80% 하락한 수준인 500 선으로 가라앉았다. 이 당시 경험으로 ‘코스닥은 투기장’이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외국인과 기관투자가들이 코스닥을 외면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코스닥의 외국인투자가 비중은 전체 시가총액의 10%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 코스피의 외국인 투자 비율은 34%가량이다. 9월 들어 코스피 상승장은 외국인들이 주도했는데 코스닥은 이 같은 일이 벌어지기 힘든 구조다. 코스닥의 기관투자 비율도 한 자릿수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주식시장의 ‘큰손’들이 코스닥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 부실 코스닥 기업, 철저히 관리해야
코스닥 정상화의 해법을 두고 상장사 사후관리 강화가 가장 많이 거론된다. 기업이 제대로 운영되는지, 공시는 제대로 하는지 수시로 점검하고 부실기업을 빠르게 퇴출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코스닥과 마찬가지로 닷컴 버블을 겪었던 나스닥은 2021년 말 4178곳이 상장돼 있었는데, 올해 3월 말 기준으로 상장사가 4139곳으로 줄었다. 수많은 기업이 기업공개(IPO)에 나섰지만 부실한 기업들은 가차 없이 상장폐지됐기 때문이다.
반면 코스닥은 상장 종목 수가 2022년 말 1527개였는데, 올해 3월 말 기준 1786개로 16.9% 늘었다. 9월 현재는 1796개다. 퇴출 요건이 미국 주식시장에 비해 관대한 탓이다.
이런 문제점을 인식한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금융투자협회 등은 내년부터 상장유지 요건을 단계적으로 강화하겠다고 올해 1월 밝힌 바 있다. 내년부터는 시가총액 150억 원을 밑도는 상장사는 상장폐지 대상에 포함된다. 2028년에는 상장폐지 대상이 되는 시가총액 기준이 300억 원까지 늘어난다. 현행 코스닥에서 상장유지를 위한 시가총액 기준은 40억 원이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나스닥은 해마다 많게는 전체 기업의 10%를 상장폐지한다. 코스닥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니 주가 부양이 어렵다”고 말했다.
투자자들과 상장사들이 코스닥에 머물 수 있는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미래 성장 가능성이 큰 기업들이 코스닥을 떠나지 않도록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방법이다. 코스닥 종목에 대한 증권거래세(0.2%)를 코스피보다 낮추는 등 혜택을 줘야 한다는 제안도 있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코스닥의 체질이 금방 개선될 문제는 아니지만 바뀔 필요가 있다”며 “될성부른 종목만 상장시키고, 혜택을 통해 지원해주는 쪽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기관투자가들을 코스닥으로 유인할 방법을 정부와 한국거래소가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재희 기자 h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