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초 우크라이나 대기근 민족성 억누르기 위해 곡물 수탈 ◇붉은 굶주림/앤 애플바움 지음·함규진 옮김/816쪽·4만8000원·글항아리
신간은 1930년대 초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대기근 홀로도모르를 다룬다. 저자는 ‘굴라크’로 퓰리처상을 받은 역사학자이자 칼럼니스트로, 러시아 및 중동부 유럽 현대사를 탐구해온 인물이다.
책의 주제는 명확하다. 스탈린 체제가 어떻게 식량을 무기 삼아 우크라이나 사회를 무너뜨렸는지에 집중한다. 곡물 수탈은 물론 주민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봉쇄한 탓에 수백만 명이 탈출조차 못 한 채 굶어 죽었다.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 민족운동은 1932∼1933년 대기근으로 궤멸했다. 저자는 이 비극이 단순한 정책 실패가 아니라, 우크라이나 민족성을 억누르려는 의도된 정치적 폭력이었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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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기근의 구조를 세밀하게 추적했다. 1980년대 후반까지 우크라이나 내부에서는 대기근에 대해 완전한 침묵이 이어졌다고 한다. 저자는 최근 공개된 문서와 생존자 증언, 지역 연구 등을 모아 소련의 정책 집행 과정을 고발한다. 기근에 대해 공적인 자리에서 한마디도 꺼낼 수 없었던 이후의 ‘기억 전쟁’까지 짚어낸다.
책을 읽다 보면 권력은 과거를 지우거나 왜곡함으로써 현재를 지배한다는 무서운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기록과 기억이 사라질 때 진실은 얼마나 쉽게 권력에 휘둘리는가. 그 물음은 과거 우크라이나만이 아니라 현재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