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리 에세이스트
농인 작가들을 만나보았다. 농문화 예술 콘텐츠를 기획하고 농인 아티스트를 육성하는 사회적 기업의 주최로 글쓰기 화상수업을 진행했다. 농문화에서는 수어를 사용하는 문화적 존재를 농인, 음성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청인이라 일컫는다. 상대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농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마음속으로 바랐다. 제 무지로 실수하지 않게 해 주세요.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해 주세요. 농인 부모와 코다 자녀의 이야기를 담은 책 ‘반짝이는 박수 소리’에서 읽었다. 나와 다른 차이를 지닌 사람과 만날 땐, 잘 모르는 세계가 조심스럽게 느껴진다고 하더라도 서로를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한다고.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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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인 작가들의 글은 다르기에 새로웠다. 소리가 없는 세계에선 사람의 감정을 보고 만지고 긁어내고 간질이고 안아주고 지켜봐주며 표현하는구나. 사고와 감정과 표현이 다채로웠다. 반면, 청인 작가인 필자는 지나치게 시각에만 의존해 보편적이고 안일한 글을 쓰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우리는 기념사진을 남겼다. 수어로 박수는 양손을 펼쳐 양쪽 귀에서 손을 흔드는 동작으로 표현한다. ‘잘 듣고 있어요. 잘 보고 있어요.’ 내내 힘차게 끄덕이던 고갯짓과 환하게 터트리던 웃음을 손바닥에 그러모아, 양손을 활짝 펼쳐 흔들었다. 고요한 화면 속에 반짝반짝 박수 소리가 쏟아졌다.
철학자 페터 비에리는 세계를 인식하고 자신을 표현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모든 열쇠는 ‘언어’라고 말했다. 새로운 언어를 익히면 다르게 사고하게 되고 다른 삶의 운율을 알게 된다. 그러면 세상 안에 존재하는 것이 다르게 느껴진다. 내 세상을 다르게 열어준 농인 작가의 문장을 나누고 싶다.
‘청인이었으면 하고 바랐던 크고 작은 순간은 많았지만,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 다르게 특별하게 살아보는 것도 괜찮다. 농인인 덕분에 수어라는 새로운 언어를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입 모양을 꼭 봐야 하므로, 한 번 더 사람들의 얼굴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좋았다. 수어를 쓰며 자연스레 표정이 다양해진 것도 좋았다. 도서관이나 지하철 같은 곳에서도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도 좋았다. 나는 내가 농인이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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