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맞은 美국립공원 ‘절경’ 보유한 美 국립공원… 41만개 일자리 창출 등 부가가치 높아 트럼프 구조조정에 인력 25% 해고… 각종 방문자 프로그램도 축소 기후 위기 심화하는데… 과학 관련 연구도 속속 중단
미국 메인주 바하버의 ‘어케이디아 국립공원 방문자 센터’의 모습. 미국 북동부의 유일한 국립공원으로 연간 400만 명이 찾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후 연방정부 구조조정 여파로 국립공원 관련 인력이 대거 해고되고 각종 프로그램 또한 축소되고 있다. 바하버=임우선 뉴욕 특파원 imsun@donga.com
임우선 뉴욕 특파원
여기에 기후 위기로 인한 폭우, 폭설, 화재와 생태계 붕괴 등도 어려움을 키우고 있다. ‘미국의 보물’로 불려 온 국립공원 운영이 점점 더 위축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 전 세계 국립공원의 원조
미국은 전 세계에 ‘국립공원(National Park)’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제시한 나라다. 1872년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인 ‘옐로스톤 국립공원’을 지정했고, 현재 미 전역에 63개의 국립공원이 운영되고 있다. 미국의 국립공원 개념은 세계 100여 개 나라에 전해져 4000곳 이상의 국립공원 조성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미국의 국립공원을 ‘미국의 최고 아이디어(America’s Best Idea)’라고 부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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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더불어 자연 그 자체만큼이나 높은 평가를 받는 건 국립공원을 운영하는 시스템과 이용자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다. 또 국립공원을 관리하는 인력의 전문성도 매우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미국의 국립공원에는 ‘파크 레인저’라고 불리는 NPS 소속 직원들이 곳곳에 있다. 이들은 공원의 유지 보수나 경비, 화재 진압, 조난자 구조와 같은 업무도 담당하지만, 이용자들에게 국립공원의 생태계와 종의 다양성을 소개하고 방문객들이 숲을 더 가까이에서 체험하고 알아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전문가 역할도 맡는다.
각 국립공원의 방문자센터에서 파크 레인저들은 주요 등산로 추천과 지도 해설을 제공하고 시간대별로 국립공원 내 주요 명소에서 방문자들을 만나 숲과 생태계에 대한 열정적인 해설을 진행한다.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유명한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파크 레인저가 아이들에게 공원에 사는 동물과 뿔의 형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옐로스톤=임우선 뉴욕 특파원 imsun@donga.com‘
국립공원마다 그 안에 멸종위기종, 기후변화에 따른 식생 변화, 산림 복원 등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을 보유한 것도 특징이다. 이 같은 풍부한 매력에 매년 3억 명 이상이 미국의 국립공원을 방문한다. 국립공원들은 주로 농촌과 오지에 위치하고 있어 지방 경제 활성화에도 상당한 도움을 준다. NPS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립공원은 미국 경제에 556억 달러의 가치와 41만5000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미국인들의 지지 또한 압도적이다. 최근 퓨 리서치센터 조사에서 미국인의 76%가 NPS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답했다. 관련 조사에서 정부기관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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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연방 정부 효율화 작업이 단행되면서 국립공원을 운영하는 NPS 예산이 대폭 삭감됐고 최근까지 직원의 4분의 1 이상이 해고됐다.
외신들에 따르면 NPS에서는 파크 레인저를 포함해 정규직 직원이 2500명 이상 감축됐고 계약직도 대거 해고됐다. 내년 예산안에서는 NPS 예산이 올해 대비 10억 달러가 줄어 109년 미국 국립공원 역사상 가장 큰 감축이 예고됐다. 인력 규모도 지난해 1만3000여 명에서 5000명 이상이 급감한 8100명대가 될 전망이다.
이미 여러 국립공원에서는 예산 삭감의 여파가 나타나고 있다. 공원 곳곳을 담당하던 파크 레인저들이 사라지면서 인력 부족으로 일부 방문자 센터 및 진입로를 폐쇄하거나 공원 내 캠핑장 운영을 중단했다. 파크 레인저가 안내하는 숲 투어 및 해설 프로그램 운영도 대폭 축소됐다. 공원을 대표하는 연례 행사들도 예산 부족에 취소 위기를 맞고 있다.
심지어 기후 위기나 생태계 변화를 연구하던 과학자들이 매표소에서 표를 발급하고 화장실 청소를 하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인력이 너무 부족해서 과학자를 포함한 거의 모든 직원이 캠핑장 화장실을 교대로 청소해야 한다”며 “수문학자와 침입종 전문가도 매표소에 배치돼 방문객을 처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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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문 어린이에게 주던 연필도 사라져
실제 이날 방문한 어케이디아 국립공원은 최고 성수기인 여름 휴가철이었음에도 예년에 찾아간 다른 국립공원들에 비해 눈에 보이는 파크 레인저의 수가 현저히 적었다.
이전의 국립공원에서는 곳곳에서 공원을 정비하고, 방문객들에게 친절한 인사를 건네며,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다양한 투어 프로그램을 안내하는 파크 레인저들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 어케이디아 국립공원에선 방문객들이 넘쳐나는 상황에서도 매표소와 방문자 센터 같은 필수 장소에서만 소수의 파크 레인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주니어 레인저’ 책자를 제공할 때 활동지 작성용으로 함께 제공되던 연필조차 사라졌다. 한 파크 레인저는 “(지금의 예산으로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어 연필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며 “필기구가 없는 아이들에게는 방문자 센터의 기념품 숍에 가서 사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미국의 국립공원들은 일단 외형적으로는 예전과 같은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앞서 더그 버검 내무부 장관이 NPS 예산 삭감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듯 모든 국립공원에 “개방된 상태로 접근이 가능해야 하고 모든 방문객에게 최고의 고객 서비스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는 명령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방문객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이 심각하게 멍들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미 국립공원보전협회(NPCA)는 “공원 관리자들이 방문객을 위한 업무와 서비스에 우선순위를 둬야 하기 때문에 진행됐어야 하는 공사나 연구 등이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특히 연구분야에서 핵심 과학 및 연구 직책이 폐지되고 출장이나 지출이 엄격히 제한되면서 국립공원뿐 아니라 미국 어류 및 야생동물국, 산림청, 미국 지질조사국, 토지관리국 등과의 중요한 업무들이 보류되고 있다고 전했다. 고고학적 조사, 외래종 제거, 해수면 상승 연구와 같은 프로젝트도 위기에 처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기적으로 미국의 수준 높은 기초과학 연구 역량에도 적잖은 타격이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바하버에서
임우선 뉴욕 특파원 ims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