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바람직한 생애주기가 있을까 선택 대부분은 사회 모델에 의존… 고민 없이 ‘생애주기’ 따르는 이유 조선 양반 삶 경로 담은 ‘평생도’… 결혼, 관직, 장수 등 이상향으로 공자는 연마-성숙으로 인생 설명… 배움 이어가는 새 주기 상상하자
관혼상제 등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겪게 되는 생활 과정을 단계적으로 담은 필자 미상의 ‘평생도’ 10폭 판화. 양교(亮轎)를 탄 고관의 행차 모습까지 조선시대 양반층에 권장된 생애주기가 잘 담겨 있다. 사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인생도 그렇다. 다들 처음 살아보는 인생이어서, 어떻게 인생을 살아갈지 막막하다. 그래서 대개 사회에서 제시하는 생애주기를 따른다. 먹고살 만한 집에서 태어났다?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별 고민 없이 사회가 정해주는 길을 따를 것이다. ‘나는 정말 고등학교에 진학해야 하는가!’라고 고민하는 중학생이 얼마나 되겠는가. 대학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다. 인기 있다는 전공을 선택하고, 무난해 보이는 직장에 다니다가, 일정한 나이가 되면 가정을 이루려고 한다. 마침내 확보한 아파트에서 자식을 낳아 키우다가 적당한 나이에 죽는 인생을 살려고 한다.
어째 다들 비슷한 인생을 살다가 죽는 것 같지 않은가? 이처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생애주기가 중요하다면, 각 사회는 바람직한 생애주기를 발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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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신의 ‘평생도 병풍’. 사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평생도에서 제시하는 바람직한 삶을 살려면, 일단 일찍 죽어서는 안 된다. 젊음의 정점에서 타버리듯 요절하는 팝스타의 인생 같은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독신으로 살아도 안 된다. 돈과 시간을 물 쓰듯 쓰는 화려한 싱글 인생 같은 것은 고려되지 않는다. 국가고시에 실패하면 안 된다. 공무원이 되지 않고 사업가나 연예인이 되는 길은 권장되지 않는다. 물론 조선시대니까 이러한 특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평생도에서 권장하는 삶이 당시 양반들이 존숭했다는 공자의 생애와도 크게 달라서 흥미롭다.
채용신의 ‘평생도 병풍’. 사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노년에 이르러 비로소 갖추게 되는 어떤 탁월함은 타고난 자질이 아니라 장시간에 걸친 노력과 배움의 결과다. 그토록 배움이 평생의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면, 노년이란 불가피하게 마주해야 하는 서글픈 최후가 아니라 전력을 기울여 추구해야 할 목표가 된다. 놀랍지 않은가, 노년이 연민이나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찬양의 대상이 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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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태에 이른 이는 관직에 연연하는 인간도 아니고, 실수를 저지를까 전전긍긍하는 인간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례한 인간도 아니고, 의식적으로 고뇌하는 인간도 아니고, 매사에 이해타산을 저울질하는 인간도 아니다. 마음껏 욕망하지만 그 욕망이 규범에 어긋나지 않는 인간이다. 논어에서 공자가 제시한 생애주기의 목표는 고관대작이 되거나 많은 자식을 낳거나 엄청난 재산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배움을 통해 또 다른 자기 자신을 창조하는 것이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