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심장 쫄깃해지는 아파트 공포영화 ‘노이즈’.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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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영화평론가·동아이지에듀 상무
[2] 구축 아파트 604호에 살던 여동생(한수아)이 층간소음에 돌아버릴 만큼 시달리다 행방불명돼요. 동생을 찾기 위해 달려간 언니(이선빈)는 청각장애를 겪고 있죠. 언니는 휴대전화 음성인식 기능을 이용해 주변 소리를 화면에 뜨는 문자로 인식하며 동생의 흔적을 추적해요. 이 와중에 얼굴부터 공포인 아래층 청년(류경수)이 층간소음의 주범을 604호로 오인해 밤마다 눈 돌아간 상태로 올라와 현관문을 식칼로 찌익 그어대며 “마지막으로 부탁드릴게요. 그 입 찢어버리기 전에요”라고 위협하면서 칼끝으로 도어록 숫자판을 삑삑삑삑 제멋대로 눌러대요.
[3] 제법 질겁할 ‘노이즈’의 내용이죠? 뒤로 갈수록 산발한 처녀귀신이 아파트 발코니와 복도와 지하실에 떡하니 보릿자루처럼 서 있는 오컬트 요소가 추가되면서 맥이 좀 빠지지만, 영화 ‘숨바꼭질’(2013년) 이후 공동주택이 주는 현실 공포를 가장 치밀하게 직조해낸 국산 영화라 할 수 있어요. 얼마 전 본 ‘나는 SOLO’에서 최종 선택을 하루 앞두고 광수가 졸려서 의식을 잃어가는 현숙을 앞에 앉혀놓고 “날 놓치면 후회할 것” “오빠가 항상 옆에 있을 테니까”라며 새벽 5시까지 가스라이팅하는 모습 이후 최고 순도의 공포를 저는 느꼈단 말이에요. 특히 휴대전화 음성인식 기능을 켠 언니의 액정화면에 “언니 요서 홉서” “킥킥킥킥킥” 같은 괴이한 문자가 뜨는 순간은 청각 공포를 시각으로 변환한 창의적 설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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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소적 제목을 가진 독립영화 ‘럭키, 아파트’(2024년)는 소음이 아닌 악취 문제를 다뤄요. 동성 커플인 선우와 희서는 영끌로 소형 구축 아파트를 마련해 제법 멋지게 인테리어 공사까지 마쳐요. 선우가 실직함에 따라 제약회사 영업사원인 희서 혼자 대출금과 이자 상환을 감당하게 되면서 두 여성 사이엔 금이 가기 시작해요. 종일 집에 틀어박힌 선우는 욕실 하수구에서 매일 흘러나오는 악취에 고통받아요. 악취의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아파트 여기저기를 들쑤시며 다니다가 결국엔 알림문까지 덕지덕지 붙이는데, 이때부터 “집값 떨어진다”는 부녀회장과의 갈등이 시작되죠. 이윽고 악취의 끔찍한 원인이 밝혀진답니다.
2월 개봉한 ‘백수아파트’도 다르지 않아요. 동네 민원이란 민원은 모두 해결해주는 동네 유명 백수 ‘거울’(경수진)이 아무 생각 없이 입주한 아파트에서 새벽마다 지축을 울리는 쿵쿵쿵 층간소음의 근원을 찾아 나선다는 내용이지요.
[5] 아파트의 공포를 다룬 요즘 한국 영화들엔 흥미로운 공통점 둘이 있어요. 우선 수십 년 된 구축 서민 아파트가 배경인 경우가 대부분이란 사실이죠. 84m²가 얼마 전 72억 원에 거래된 서울 반포 래미안원베일리 같은 강남 아파트들은 공포영화엔 도통 안 나와요. 두 번째는, 주인공이 제기하는 소음과 악취 이슈를 덮으려는 장본인은 한결같이 산발에다 시체 같은 얼굴을 한 부녀회장님이란 점이죠. 영화 속 부녀회장님들은 “이상한 소문 나면 재건축도 안 된다”며 일본 공포영화 ‘링’의 사다코처럼 온몸의 관절을 꺾을 듯한 기세로 다가온다고요.
그런데 이런 영화들이 결정적으로 간과한 점이 있어요. 변두리 아파트들은 치솟는 건축비를 감당 못 해 재건축 자체가 불가능해졌단 사실 말이에요. 구축 아파트 최고의 체감공포는 층간소음이 아닙니다. 벙커버스터보다 무서운 건축비 추가 분담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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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영화평론가·동아이지에듀 상무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