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물낚시 예산 해수부가 챙겨달라” “폐수 시설 지하화 환경부 지원을” 부실 얼룩진 李정부 첫 인사청문회 정책 질의 빙자 ‘민원간담회’ 지적
이재명 정부 장관 후보자 16명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마무리된 가운데 여야 의원 상당수가 후보자들에게 지역구 관련 민원성 질의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위 공직자로서 직무수행 능력과 자질을 갖췄는지 검증해야 할 청문회에서 정책 질의를 빙자한 민원이 이어지면서 인사청문회가 ‘민원 간담회’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가 개최한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충북 증평-진천-음성을 지역구로 둔 더불어민주당 임호선 의원은 해수부의 예산 지원을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그는 “해수부 전체 예산 중에서 우리 충북에 지원이나 투자가 거의 없다는 지적이 많다. 좀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청문회 말미 추가 질의에서도 임 의원은 “질의 사항은 없고요. 바다 없는 충북에도 어촌계가 있다. 민물 낚시하는 분들이 가장 많이 찾는 데가 우리 충북이라는 점 꼭 잊지 말고 챙겨 주시라”고 재차 말했다.
충북도는 내수면 어업 육성과 충주·대청호 관광 개발 등을 추진하면서 국립해양수산교육센터 등 해양수산 관련 기관 유치에 나선 상황이다. 하지만 청문회에서 사실상 지역구 민원을 거듭 요청한 것을 두고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 의원 측 관계자는 “내수면 사업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차원이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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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인사청문회는 대부분 증인과 참고인 없이 진행돼 ‘맹탕 청문회’가 됐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여당은 후보자에 대한 일방적인 엄호에 급급하고, 야당은 뚜렷한 ‘한 방’이 없이 정쟁만 이어갔다는 평가 속에 여야 모두 지역 민원부터 챙기려는 모습을 보이면서 인사청문회의 본질이 훼손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자질과 전문성 검증이라는 원래 취지에서 벗어난 것”이라며 “자칫 후보자에게 ‘잘 봐줄 테니 민원 해결해 달라’는 식의 ‘갑질’로 비칠 소지도 있다”고 꼬집었다.
바다없는 충북에 “해수부 예산 지원을”… “4조 고속철 예타면제”도
인사청문회서 민원 쏟아낸 여야
초반 도덕성 지적하며 공세 펴다
정책질의 빗대 지역현안 해결 요구
“장관 검증 위한 기회 낭비” 비판
“달빛고속철도 아시지요?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를 좀 전향적으로 검토해 주십사 부탁드리는데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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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가 14∼18일 열린 장관 후보자 16명의 인사청문회 회의록을 분석한 결과 대부분의 청문회에선 이처럼 지역 민원 해결이나 선호시설 유치를 요구하는 질의가 나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장관 후보자의 역량과 자질을 검증해야 할 인사청문회 자리가 ‘민원 간담회’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 여야 가리지 않은 민원성 질의
더불어민주당 김영진 의원은 17일 구 부총리 청문회에서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C 노선 사업이 늦어지는 점을 거론했다. 김 의원 지역구(경기 수원병)인 수원역과 양주시 덕정역을 잇는 GTX-C는 지난해 1월 착공식을 열고도 공사비 급등으로 착공이 지연되고 있다.
김 의원은 “민간투자사업계획을 변경해 주는 게 현실적이지 않으냐”고 물었다. 사업계획을 수정해 공사비를 높여야 한다는 취지다. 구 부총리가 “관계 부처와 좀 협의도 해 보고…”라며 즉답을 피하자 김 의원은 “이렇게 되면 GTX A∼F (노선을) 하나도 진행하지 못한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협약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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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앞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인 민주당 임호선 의원(충북 증평-진천-음성)은 14일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해수부 전체 예산 중에서 우리 충북에 지원이나 투자가 거의 없다는 지적이 많다”며 “바다 없는 충북에도 어촌계가 있다”고 했다.
야당인 국민의힘에선 청문회 후반 민원성 질의를 꺼내는 의원이 많았다. 장관 후보자들의 도덕성을 지적하며 공세를 펴다 정책질의를 명분으로 지역구 현안 해결을 당부하는 식이다. 국민의힘 이성권 의원(부산 사하갑)은 18일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부산으로 해양수산부를 이전한다면 (산업통상자원부 소관인) 조선·해양 플랜트 기능을 해수부에 결합시켜야 되는 것 아닌가”라고 물었다. 그는 “해수부 직원이 800명 정도밖에 안 된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그냥 구청 하나 옮기는 거냐’고 얘기할 수도 있다”고 했다.
● 검증 사라지고 민원만 남은 청문회
여야 의원들이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앞다퉈 지역구 민원 해결을 요청한 것에 대해 정치권에선 “장관 후보자들이 민원을 거부하기 가장 어려운 순간을 노린 것”이라고 지적한다.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이 급한 장관 후보자들로선 무리한 민원이더라도 면전에서 무시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 국회 관계자는 “인사청문회에서 민원성 질의를 하면 검증대에 선 장관 후보자가 흘려 듣기 어렵다”며 “의원들이 그 점을 노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번 인사청문회가 여야 대치로 대부분 증인과 참고인 없이 치러진 가운데 일부 의원들이 청문회를 민원 창구로 활용하면서 가뜩이나 부족한 검증 기회를 낭비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