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계자로 차남 모즈타바 유력…‘성직자’로 인정받지 못한 게 치명적 약점
36년간 권력을 잡아온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가 미국의 공격 가능성으로 집권 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 뉴시스
이란은 명목상 이슬람 공화국일 뿐, 종교지도자가 국가를 통치하는 신정체제(Theocracy) 국가다. 이란에서 최고지도자는 대통령보다 높은 지위와 권력을 지닌다. ‘신의 대리인’으로 불려온 하메네이는 현재 미국과 이스라엘의 ‘참수 작전’을 우려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반대파 탄압으로 정통성 강화한 하메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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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생인 하메네이는 1979년 이슬람혁명(이란혁명)을 이끈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 전 최고지도자의 열렬한 지지자이자 혁명 1세대를 대표하는 성직자다. 하메네이는 1960년대부터 팔레비 왕조를 타도하기 위한 운동에 뛰어들어 호메이니의 최측근 인사 중 한 명이 됐다.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국방부차관, 혁명수비대 사령관 등 각종 요직을 거쳤다. 1981년 마무드 알리 라자이 당시 대통령이 폭탄테러로 살해된 후 치른 선거에 출마해 대통령에 당선했고, 1989년까지 재임했다. 이후 호메이니가 1989년 사망하자 최고지도자로 선출됐다.
본래 호메이니 후계자로는 호세인 알리 몬타제리라는 이슬람 시아파 최고위급 성직자도 거론됐다. 하지만 몬타제리는 호메이니가 독재 국가를 세우고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숙청하는 것에 반발해 스스로 후계자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2009년 죽을 때까지 스스로 가택연금을 자처하며 은둔 생활을 했다.
6월 13일(현지 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이스라엘 공습으로 폭발이 발생한 직후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뉴시스
하메네이는 집권 후 상대적으로 정통성이 약해 취약한 자신의 권력 기반을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엄격하게 적용하는 등 폭정으로 강화했다. 특히 하메네이는 이슬람 혁명수비대를 동원해 개혁파를 철저히 탄압했다. 혁명수비대는 1979년 호메이니가 이슬람혁명과 신정체제를 수호하려고 창설한 제2 군대로 일종의 친위대다. 최고지도자 명령만 따르며, 정규군과 동일한 계급에 병력은 총 25만 명이다. 육해공군과 정보전 부대, 준군사조직 바시즈(Basij) 민병대가 있고, 특수부대(쿠드스군)를 보유하고 있다. 게다가 중장거리탄도미사일과 핵시설도 통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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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최고지도자는 86명으로 구성된 성직자 평의회인 전문가 회의(국가지도자운영회의)에서 선출된다. 현재 국가지도자운영회의 의장은 강경 보수파 성직자인 모하마드 알리 모바헤디 케르마니(93)다. 국가지도자운영회의에서는 그동안 하메네이가 고령인 점을 고려해 후계자 문제를 논의해왔다. 지난해 11월 하메네이의 후계자 후보 3명을 선출해 승계 우선순위를 정했다. 후보자들이 누구인지는 극비에 부쳤다.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후계자로 거론되는 차남 모즈타바(위)와 알리레자 아라피 헌법수호위원회 위원 겸 국가지도자운영회의 위원. GETTYIMAGES · 위키피디아
또 다른 후계자 후보로는 알리레자 아라피 헌법수호위원회 위원 겸 국가지도자운영회의 위원이 있다. 아라피는 2000년대 초반부터 명망 있는 종교지도자로 꼽혀왔다. 그는 시아파 교리를 설파하는 핵심 기관인 알무스타파국제대 총장으로 하메네이가 직접 발탁한 인물이다. 콤에서 금요 대예배를 집전하며 이슬람 신학교 지도자로서 시아파 신학자들을 육성해왔다. 하셈 호세이니 부셰리 국가지도자운영회의 제1부의장이자 콤 금요 예배 지도자도 후계자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美 하메네이 암살 시 승계 정당화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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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이스라엘이나 미국이 하메네이를 제거할 경우 모즈타바의 권력 승계가 정당화될 수도 있다. 하메네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최후통첩에 “항복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순교’를 각오한 입장을 밝혔다. 하메네이가 순교한다면 아들인 모즈타바는 성스러운 후계자로 받아들여지고, 부족한 자격도 비상 상황 탓에 넘어갈 수 있다. 게다가 혁명수비대를 비롯한 군부와 정보기관 등은 모즈타바를 후계자로 적극 지지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란 국민이 이를 인정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권력 세습은 이슬람혁명 정신에 위배된다. 이슬람혁명은 팔레비 왕조를 축출하면서 세습통치를 종식했다는 의미가 있는데, 세습통치가 이뤄진다면 왕정체제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이란 국민은 신정체제에 따른 권위주의 통치와 제재로 인한 경제난, 만성적인 민생고, 여성 차별, 인권과 언론 탄압, 부정부패 등에 상당한 불만을 표출해왔다. 특히 젊은 층은 민주주의 등 개혁을 요구하며 권력세습에 반대해온 만큼 봉기할 가능성도 있다. 모즈타바가 국민의 반발을 막고자 혁명수비대와 바시즈 민병대를 동원할 경우 유혈사태 등 엄청난 혼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 서방 언론들은 “이슬람혁명으로 수립된 이란 신정체체가 존속의 갈림길에 섰다”고 지적했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94호에 실렸습니다.〉